[이종혁의 투자] 한국거래소 셀프 상장한다면
(서울=연합인포맥스) 올해 들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오른 코스피 지수가 연말을 앞두고 4천선 전후에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11월 들어 미국발 인공지능(AI) 거품론, 미정부 셧다운 여파, 증시 고평가 논란 등이 겹친 결과다. 이 시기 외국인이 7조원어치나 국내 주식을 내다 팔면서 부담을 줬다. 정부가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을 낮추는 제도개혁을 통해 증시 부양의 군불을 때고 있지만, 증시 자체에서도 상승 동력이 필요한 때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코스피 5천선까지 가려면 다시 기본에서 되돌아봐야 한다.
증시 내부의 동력은 상장사의 실적개선과 밸류업(Value-Up) 프로그램 두 가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도체 저승사자로 불리던 모건스탠리가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의 내년 이익이 116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고, 다른 상장사의 이익 기대치도 점차 상승세를 보인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이렇다면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 노력을 더 강화하는 게 맞다. 밸류업 정책의 지킴이를 자처하는 단체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개혁 계기가 둔화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또 다른 외국인의 대량 매도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2024년부터 시작된 정부 주도의 밸류업 정책 이후로 많은 대기업 계열 상장사가 배당 증대,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의 주주환원 정책 실행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직 이 온기가 전반으로 확산하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일부에서는 정부와 한국거래소의 리더십 부족으로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특히 일본 증권거래소그룹(JPX)이 추진한 기업 거버넌스 '액션 프로그램'을 언급하면서 한국거래소가 기업 경영진을 직접 만나서 밸류업 계획 발표를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봄 국내 상장사들의 주주총회장 주인공은 기존 대주주보다는 행동주의 펀드들이 될 여지가 많다. 이들의 바람은 하나다. 거버넌스의 개선과 밸류업으로 기업의 가치가 더 오르는 것이다. 이는 한국 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경제 전체적으로 자본의 효율적인 배분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국내 자본시장의 규모는 한정적인데 상장사만 계속 늘어나는 구조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이고, 여기에 밸류업을 하지 않는 상장사를 그대로 둬서 자본의 비효율화를 방관하는 거래소의 역할 부재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거래소가 직접 상장사가 돼보고 밸류업 정책을 실행해보는 건 어떨까. 상장사로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프로그램을 몸소 실행해보는 것은 상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 거래소가 이때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서 한국 증시의 상장사들을 관리하고 밸류업 참여를 독려한다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정부는 3차 상법 개정까지 계획하면서 코스피 5천 달성에 대한 의지가 강력하다. 따라서 거래소 스스로가 상장사로서 행동하고, 시장 친화적으로 서비스해 간다면 한국 자본시장을 더 빨리 업그레이드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참고로 일본증시 밸류업에 앞장선 JPX는 자신이 관리하는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디지털뉴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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