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3천500억불 투자 합의…제때 못 내면 관세 인상 가능성(종합)
김정관-러트닉 MOU 체결…7월 관세 협상 타결 후 3개월여만
2천억불 직접 투자…年 200억불 상한 설정
정부, 운용수익·외화채 발행으로 조달…외환시장 안정 '최우선'
(서울=연합인포맥스) 유수진 기자 = 한미 양국이 3천5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 관련 세부 내용에 대해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지난 7월 큰 틀에서 타결한 관세 협상의 후속 조치다. 이후 수십 번의 추가 협상을 거쳐 3개월 반 만에 사실상 마지막 단계인 양해각서(MOU) 서명에 도달했다.
가장 쟁점이었던 2천억 달러 투자 관련해 우리는 연 200억 달러 한도로 미국이 선정한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 측 초기 요구였던 3천500억 달러보다 43% 줄였지만, 제때 납입하지 못할 경우 관세 인상까지 감수해야 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14일(한국시각)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MOU'에 서명했다. 물리적 거리를 고려해 두 장관이 각자 서명한 뒤 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해당 MOU에 따라 3천5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는 2천억 달러의 직접 투자와 1천500억 달러 조선 협력 투자로 이뤄진다. 후자는 우리 기업의 직접투자(FDI)와 보증, 선박금융 등으로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2천억 달러 투자 관련해선 미국 대통령이 투자 사업을 선정한다. 하지만 우리의 의견을 반영할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한국 산업통상부 장관과 미국 상무장관이 협의를 거쳐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투자'를 미국 대통령에게 추천한다. 여기서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투자란,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판단했을 때 충분한 투자금 회수가 보장되는 투자다.
투자 분야로는 조선과 에너지, 반도체, 의약품, 핵심 광물, 인공지능·양자컴퓨팅 등이 명시됐다. 조선 산업의 경우 1천500억 달러 조선 협력 투자 외에 직접 투자도 진행된다는 뜻이다. 사업 선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9년 1월까지 마친다.
다만 우리가 미국의 투자금 납입 요청을 제때 이행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미국은 우리가 미납 투자금을 채울 때까지 대신 이자를 수취하며, 최악의 경우 관세 인상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번 MOU를 충실히 이행하는 게 관세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의미다.
다만 '관세 인상'이 아예 '관세 협상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경우 미국 측에서 관세를 인상하게 돼 있다"면서 "이 같은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프로젝트별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자금요청(캐피탈 콜) 방식으로 투자금을 지출한다. 양측의 합의에 따라 연간 200억 달러 한도로 설정했다.
다만 필요시 납입 시기와 규모 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우리 협상팀이 미국 정부에 대규모 자금 유출 시 우리의 외환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이해시켰기에 가능했다.
투자 수익 배분 비율은 원리금 상환 전후가 다르다. 상환 전에는 양국이 5대5지만 상환 이후엔 한국과 미국이 각각 1대9로 바뀐다. 다만 20년 내 전체 원리금 상환이 어려울 경우 수익 배분 비율 조정도 가능하도록 문을 열어뒀다.
정부는 최대한 외환시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2천억 달러를 조달하기로 했다. 시장에서 직접 매입하는 방식 대신 외화자산의 운용 수익을 활용하거나 외화채권을 발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 특별기금도 설립한다. 아직 현재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로, 정부는 관련 내용이 마련되는 대로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다.
김 장관은 "저희는 투자 자금을 가능하면 외환시장의 외환 수익을 통해서 조달하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외환시장에서 직접적인 시장 개입을 통해서 달러를 가져가는 그런 일은 가급적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영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 국제차관보는 한국은행 외자운용원과 한국투자공사(KIC)의 외환보유액 운용을 통해 수익이 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차관보는 "과거 4~5년간 연간 150억~180억 달러 규모의 수익이 났다"면서 "이 정도 수익이 날 걸로 예상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특별 기금이 정부 보증채 형태로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해 달러화를 조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MOU 체결로 우리는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의약품 등에 대해 관세 15%를 확보했다. 반도체 역시 주요 경쟁국인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확보해 수출 기업의 불확실성을 낮췄다.
다만 철강의 경우 추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 품목별 관세 50%가 그대로 적용된다.
김 장관은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철강과 알루미늄"이라며 "미국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철강 관세에 대해 50%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철강 분야 (협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앞으로도 철강 관련 협상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최대한 민첩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j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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