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式 소비자보호] "가족에게 팔 상품만"…금소법에 운용사 책임 담나
그동안은 판매 절차 규율만 감독…제조사-판매사 간 책임 떠넘기기 공방 방지
(서울=연합인포맥스) 박경은 기자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내세운 소비자보호 개편 구상이 구체적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간은 판매 절차를 규율하는 데 감독의 방점을 둬왔다면, 이제는 상품을 만드는 단계부터 소비자 보호 기준을 심겠다는 방향성을 내세웠다.
'가족에게 권할 수 있는 상품'만 시장에 나와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제조사의 책임을 규율할 수 있도록 금융소비자보호법을 개정하는 방향까지 살필 것으로 보인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금융투자상품과 관련한 소비자보호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13일에는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고, 학계와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도 했다.
'이찬진표 소비자보호'의 두 축 중 하나는 제조사의 책임 강화다. 구상 단계에서부터 상품이 투자자에게 미칠 영향을 세밀히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원장은 당시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운용사의 책임 의식을 강조했다. 그는 "(상품의) 설계 하자와 관련한 부분은 3개월간 계속 보고 있지만, 이건 근본적으로 치유해야 할 문제"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금융상품의 제조와 관련한 책임성 강화를 주목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금소법 개정도 포함하는데, 개인적으로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금소법은 판매사의 상품 권유 및 판매 행위를 규율하는 데 초점이 맞췄다. 당시 금융상품 불완전판매에 대한 소비자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금소법이 처음 국회에 오른 2011년이지만, 실제 제정까지는 9년이 더 걸렸다. DLF·라임 등 사모펀드 불완전판매가 금소법 제정의 '트리거'가 됐다. 당시 투자자들은 판매사가 위험을 축소하고 수익률을 과장해 현혹했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감독 부실 논란까지 겹치면서 금융당국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에 그간 개별 금융 관련법에 산재해있던 금융소비자보호 관련 제도를 하나로 통합하고, 금융상품 및 영업행위를 그 속성별로 분류해 규제한 금소법이 탄생했다.
금소법의 핵심은 '6대 판매원칙'이다. 적합성·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 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를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해외부동산펀드·ELS 등 금융투자상품 사고가 잇따르면서, 단순 판매 규율로는 소비자 피해를 막기 어렵다는 비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감독을 '판매 단계'에 가두어 두는 기존 체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찬진 원장이 제조 단계 책임을 거론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만약 금융상품 제조사에 대한 책임 규율이 명확해지면, 그간 소비자 민원 이후 반복되어 온 제조사와 판매사 간의 책임 떠넘기기 공방도 방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럽연합은 금융상품시장지침(MiFID Ⅱ)을 통해 제조사와 판매사의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제조사는 목표 고객을 설정하고, 상품 구조와 수익구조 설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위험 구조를 설명할 기초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판매사는 국내와 마찬가지로 소비자의 적합성과 적정성을 판단해 원칙에 어긋날 경우 상품을 판매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 더해 MiFID Ⅱ는 상품 출시 이후에도 제조사와 판매사 모두가 상품의 성과와 민원, 시장 위험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필요할 경우 판매를 중단하거나 구조를 수정하도록 의무를 부과한다.
특히 이 법은 금융투자업자에게 영업행위규제 외에 별도의 사전·사후 의무를 동시에 지운다는 점에서, 현재 금소법에 제조사 책임을 명확히 포함하려는 감독당국의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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