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증권 증자] 지주 현금 대신 신용…CPS+풋옵션 묘수 둔 까닭
'연 5.2%~8.0%' 사실상 의무 배당·2년 뒤 풋옵션…투자 매력↑
(서울=연합인포맥스) 송하린 이규선 기자 = 메리츠증권이 자기자본 8조원을 조기 달성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그 방법으로는 통상 증권사에서 사용하는 지주사 배정 유상증자가 아닌, 특수목적법인(SPC)과 풋옵션을 결합한 사모 전환우선주(CPS) 발행을 택했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다음달 12일 5천억원 규모의 전환우선주를 발행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확대된 자본력을 바탕으로 다른 대형 투자은행(IB)과의 본격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번 증자로 메리츠증권의 별도 자기자본은 7조1천917억원에서 7조6천917억원으로 확대된다.
◇지주사 '현금' 대신 '신용' 활용… SPC 통한 영리한 조달
자금 조달 구조는 비교적 독특하다.
앞서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지주사가 직접 현금을 꽂아주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금융지주는 신종자본증권 등을 발행해 수혈 자금을 마련했고, NH농협금융지주도 6천500억원의 현금을 투입했다.
반면 메리츠증권은 지주사의 '현금' 대신 '신용'을 활용했다.
메리츠증권이 발행하는 CPS 5천억원어치는 SPC인 '넥스라이즈제일차'가 전량 인수한다. 해당 SPC가 이를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판매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메리츠금융지주는 SPC에 풋옵션을 제공했다. 투자자가 원할 경우 지주사가 주식을 되사주겠다는 약속이다. 그 덕분에 비상장사인 메리츠증권의 CPS임에도 시장에서는 메리츠금융지주의 우량한 신용도를 바탕으로 발행된 채권급 안정성을 인정받게 됐다.
◇지주 레버리지 방어·증권 자본 확충…두 마리 토끼 잡았다
다소 복잡한 구조를 짠 배경에는 상장사인 메리츠금융지주의 재무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셈법이 깔려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자회사 지분투자, 지급보증 등으로 재무부담이 높은 편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이중레버리지 비율이 119.3%에 달해 금융지주사 평균(올해 3월 말 기준 112.7%) 대비 높다.
이 상황에서 자회사 유상증자는 지주사의 이중레버리지비율을 더 높이게 된다. 반면 CPS에 풋옵션을 제공하는 방식은 당장 현금이 나가지 않아 지주사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발행 수단으로 신종자본증권이나 후순위채가 아닌 CPS를 택한 것은 '자본의 질' 때문이다.
메리츠증권은 이미 9월 말 기준 영업용순자본의 절반에 해당하는 2조8천억원을 후순위성 증권 발행으로 충족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신용평가사에서는 보다 보수적인 자본비율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 인정 효과가 감소하는 후순위성 증권보다는 질이 더 높은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이에 메리츠증권은 보완자본(Tier2)이 아닌 기본자본(Tier1)을 확충하고자, 상환권이 없는 CPS 발행을 통한 유상증자를 선택했다.
이번 증자로 메리츠증권의 구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은 146.5%에서 159.2%로, 신 NCR은 1천353.6%에서 1천724.1%로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레버리지비율 역시 893.1%에서 833.2%로 낮아져 재무 건전성이 강화된다.
◇최저 5.2% 보장·지주 풋옵션 안전판 '채권형 주식'…투자 매력↑
이번 CPS는 배당률이 최소 연 5.2%에서 최대 연 8.0%에 달하는 고배당 상품으로 설계됐다.
전환권을 행사하더라도 비상장사인 메리츠증권 주식으로 바뀌어 당장 시장 매각을 통한 시세차익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현금 흐름과 원금 회수 장치를 마련해 이를 보완했다.
가장 큰 안전장치는 모회사인 메리츠금융지주가 제공하는 풋옵션이다. 투자자는 발행 약 2년 뒤인 2027년 10월부터 지주사에 주식을 되팔 수 있다. 신용등급 'AA' 수준의 원금 회수 안정성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 '누적적' 배당 조건이 붙어 안정성을 더했다.
회사가 특정 해에 배당하지 못할 경우, 미지급된 배당금은 부채처럼 쌓여 차기 연도로 이월된다. 우선주 투자자에게 밀린 배당을 주기 전까지는 보통주 배당이 전면 제한되므로, 사실상 배당 지급이 강제되는 효과가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채권과 다름없는 안정성을 누리면서 고수익을 챙길 수 있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메리츠증권이 5%를 웃도는 높은 조달 비용을 감내하는 배경을 '수익성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한다.
조달한 자금을 기업금융(IB) 등 고수익 자산에 투입해 배당률 이상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는 분석이다. 메리츠증권의 올해 3분기 기준 연 환산 ROE는 11.7%에 달해, 조달 비용을 상회하는 이익 창출 체력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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