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한국물 발행…달러화부터 이종통화까지 다 잡았다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공모 한국물(Korean Paper) 시장을 통한 조달 작업이 사실상 막을 내리고 휴지기에 들어갔다.
국내 기업들은 달러화는 물론 유로화와 엔화, 호주달러, 홍콩달러 등 다양한 통화 시장을 겨냥해 연내 막바지 조달을 마무리했다.
사상 최저 가산금리(스프레드)를 경신하는 등 한국물 몸값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내년 발행을 준비하는 기업들의 부담은 한층 커질 전망이다.
◇ 조달 통화 다변화 속도…연말 개점휴업 돌입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한국도로공사의 20억홍콩달러 완탕본드 프라이싱(pricing)을 끝으로 공모 한국물 시장은 개점휴업에 돌입했다.
달러채 발행이 135일룰로 제한되는 데다 연말 북클로징 시기 등이 맞물리면서 연내 이종통화 조달도 막을 내린 분위기다.
내달까진 일부 한국물 발행사들이 사모 외화채를 찍는 흐름 정도만이 드러날 전망이다.
공모 한국물 시장은 지난주까지도 호조를 보였다.
특히 이번 달에는 다양한 이종통화 채권 발행이 이어졌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3억달러 규모의 포모사본드를 발행했다.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유로화 채권 시장을 공략했다.
LH의 경우 통합 후 처음으로 공모 유로화 채권 시장을 찾아 조달처를 다변화했다.
유로화 채권 시장은 투자자 특성이 보수적이라는 점에서 초도 발행이 쉽지 않은 곳으로 꼽힌다.
하지만 무사히 데뷔전을 마치면서 조달 통로를 확대했다.
한국도로공사는 공모 홍콩달러 시장으로 조달처를 확대했다.
도로공사는 앞서 사모 홍콩달러 채권을 찍던 데에서 공모로 발을 넓혔다.
이는 최초의 기업물(corporate) 완탕본드로 이목을 끌었다.
완탕본드는 그동안정부·국제기구·기관(SSA) 발행만 이어졌다.
신한은행은 일본과 호주 시장을 모두 활용했다.
400억엔 규모의 사무라이본드를 찍은 데 이어 5억호주달러어치의 캥거루본드를 발행한 것이다.
스위스프랑 채권도 등장했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말 프라이싱을 통해 지난 13일(납입일 기준) 1억스위스프랑 규모의 채권을 찍었다. 수출입은행의 보증으로 신용도를 보강했다.
이종통화 채권 발행이 활발했던 건 기업들의 다양한 조달 수요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현지 통화 자금 수요에 대응해 이종통화를 찍은 곳은 물론, 조달처 다변화를 위해 새로운 시장으로 발을 넓힌 곳도 있었다.
기업들의 조달이 활발해지면서 이번 달에는 공모 한국물 조달 통화가 한층 다양해졌다.
◇달러채 활황 계속, 스프레드 부담 감지도
달러채 시장도 활황을 이어갔다.
한국전력공사는 이달 초 글로벌본드(144A/RegS) 시장을 찾아 10억달러어치 채권을 찍었다.
당시 국내 크레디트 시장은 투자심리 위축으로 한전채 발행 스프레드가 확대되는 국면이었다는 점에서 외화채 시장 개척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달러채의 경우 한국물 활황세 속에서 넉넉한 수요를 확보했다.
스프레드 역시 원화 민평금리와 비슷한 수준을 형성해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했던 국내 시장과는 차이를 보였다.
한국동서발전 역시 한국물 발행을 재개했다.
지난달 말 북빌딩(수요예측)을 통해 이달 3억달러어치 채권을 찍은 것이다.
한국전력공사 발전자회사의 경우 원화 대비 금리 경쟁력 등을 가늠하면서 한동안 대부분 한국물 시장을 찾지 않았다.
한국수력원자력만이 매년 시장을 찾아 달러채 발행을 지속했다.
다만 이번 동서발전의 조달로 한수원을 제외한 발전자회사로는 2년여 만에 공모 달러채 발행이 재개됐다.
동서발전의 경우 한국물 활황 등을 바탕으로 원화채와 비교해도 경쟁력 있는 금리를 형성했다는 후문이다.
한국물 달러채의 경우 역대 최저 스프레드 경신을 지속하면서 올 하반기 꾸준히 몸값을 높여왔다.
스프레드 축소를 지속한 결과 지난달 찍은 대한민국 정부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은 5년물 기준 동일 만기의 미국 국채금리와의 격차를 17bp까지 좁히기도 했다.
한국물이 5년물 기준 미국 국채금리와의 격차를 10bp대까지 축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물 몸값이 나날이 비싸지면서 차츰 투자자들의 부담도 드러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은행 관계자는 "스프레드가 워낙 저점을 찍었다 보니 이젠 바닥을 찍고 올라가는 분위기"라며 "이번 달 발행물이 호조를 이어가긴 했지만, 지난 9월만큼의 활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연내 공모채 발행이 마무리된 만큼 시장의 시선은 내년을 향하고 있다.
미국의 연말 금리 인하 가능성을 두고 불확실성이 고조된 점은 변수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시장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2월에 금리를 25bp 인하할 가능성을 80%대로 가격에 반영했다.
이는 한때 30%대 수준을 보이기도 했으나 최근 인하 가능성에 다시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른 IB 관계자는 "미국의 채권 발행시장 역시 이번 주 추수감사절을 맞아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가운데 연준의 금리 인하 판단을 두고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다행히 한국물은 시장이 출렁이기 직전에 발행을 마쳐 잘 마무리됐으나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새해 조달을 두고 시장 분위기를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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