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억 더 필요한데 1천억 매각이 맞나'…삼양식품 자사주 처분의 '수상한 셈법'

2025-11-26     이규선 기자

증설 공시로 자사주 매각 악재 희석 시도 의혹…실제 증액은 58억 불과

거버넌스포럼 "자사주 매각 성장재원 포장된 나쁜 선례"

삼양식품
[삼양식품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해 자사주를 처분합니다."

삼양식품이 지난 19일 994억원 규모의 자사주 전량을 매각하며 밝힌 이유다. 하지만 같은 날 나온 또 다른 공시와 매각 대상을 뜯어보면 이 설명은 설득력을 잃는다. 58억 원을 더 쓰기 위해 무려 1천억 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그것도 '단타 세력'에 가까운 곳에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최근 자사주 처분 공시와 중국 현지 생산법인 투자 정정 공시를 동시에 냈다. 투자 정정 공시의 핵심은 중국 생산 라인을 기존 6개에서 8개로 늘린다는 내용이다. 주력 제품인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공급 부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증설은 투자자에게 호재로 인식된다.

시장에서는 삼양식품이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자사주 전량 처분 소식을 긍정적인 증설 뉴스로 희석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금액의 차이다. 정정 공시에 따르면 예상 투자금액은 기존 약 2천14억원에서 2천72억원으로 약 58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현금흐름이 좋은 삼양식품이 고작 58억 원의 추가 자금 때문에 1천억 원어치 자사주를 매각했다는 '수상한 셈법'에 거버넌스 전문가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금감원 EB 심사 강화되자 블록딜로 우회?

자금이 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매각을 서두르다 보니 매각 방식도 석연치 않다.

통상 기업이 자사주를 활용해 자금을 조달할 때는 교환사채(EB) 발행 방식을 선호한다. 자사주를 담보로 하는 EB는 당장 주식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고, 통상 현재 주가보다 높은 가격(할증)에 교환가액이 설정되므로 주가 하락 부담도 덜하다.

하지만 삼양식품은 시장가보다 3.5% 할인된 가격에 주식을 넘기는 블록딜 방식을 택했다. 이를 두고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최근 금융감독원이 자사주 EB 발행에 제동을 건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현금성 자산이 풍부한 기업이 자사주 EB를 발행할 경우 '왜 보유 현금을 쓰지 않고 굳이 자사주를 활용하는지' 구체적으로 소명하도록 공시 서식을 강화했다. 실제로 광동제약, 태광산업 등 현금 보유량이 많은 기업이 강화된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해 EB 발행을 철회하기도 했다.

현금 흐름이 매우 양호한 삼양식품 입장에서도 당국의 깐깐해진 심사를 통과해 EB를 발행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결국 규제를 피해 자금을 조달하려다 보니, 주가 하락을 감수하고서라도 즉시 처분이 가능한 블록딜로 우회했다는 지적이다.

◇블록딜 매수자 3곳 분석해보니…'장기 투자자'는 없었다

주식을 받아 간 곳의 성격도 지적받고 있다. 장기 투자자가 아닌 할인율 차익을 노린 이벤트 드리븐 펀드들이 많기 문이다.

먼저 점프 트레이딩(Jump Trading)은 순수 프랍 트레이딩 회사다. 밀리초(1000분의 1초) 단위로 거래하는 고빈도 매매(HFT)와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주특기다. 기업의 장기적 가치보다는 순간적인 시세 차익을 노리는 곳이다.

비리디언(Viridian Asset Management)도 블록딜이나 유상증자 등 이벤트에 특화된(Event-driven)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생태계를 잘 아는 한 글로벌 퀀트 트레이딩 회사 대표는 "점프 트레이딩이 블록딜에 참여한 것은 단순 시세차익 목적으로 보인다"며 "할인을 받을테니 곧바로 시장에 매도해 차익을 실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삼양식품 주가는 블록딜 직후 3거래일(21~25일) 연속 하락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회장 이남우)은 이날 논평을 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경영진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남우 회장은 매각 대상에 대해 "위 3곳의 외국인은 장기투자하는 우량펀드가 아닐뿐더러 2곳은 단기매매 중심의 투자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시총 10조원의 K-푸드 간판기업이 시장의 존경을 받는 연기금 및 장기투자자를 주주로 모셔야지 왜 단기 트레이딩 펀드들에게 자기주식을 매각했는지도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상법 개정 피하려 자사주 털어내기 의심"

시장에서는 이번 매각이 정치권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움직임을 피하기 위한 '선제 조치'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매각 5일 뒤인 25일, 야당은 자사주 취득 후 1년 내 소각을 강제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회장은 "자사주 제도 개혁을 위한 상법개정안 발의 전에 긴급하게 삼양식품이 이사회를 통해 자기주식을 자산 취급해 처분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자기주식은 (자산이 아니고) 자본으로 성격을 명확히 한다"며 "삼양식품 케이스는 자기주식을 자산 취급해 성장재원 마련으로 포장한 나쁜 선례"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사회가 재무적 대안을 충분히 검토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이 회장은 "삼양식품은 현금흐름이 매우 양호하고 재무건정성도 뛰어나 투자자금이 많이 필요하다고 해도 굳이 자기주식을 시장에 매각하면서 현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다"며 "김정수 대표 포함 8명의 이사들은 994억원의 자기주식 매각 대신, 잉여현금흐름이나 보유 현금의 활용, 회사채 발행 등 다른 조달 방법과의 우열을 진지하게 검토했는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이번 매각이 '주주와의 약속 위반'임을 강조했다. 4년 전 자사주를 취득할 당시 내세웠던 명분은 '주주가치 제고'였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김정수 대표는 4년 전 공시에서 밝힌 자기주식 취득 목적 '주주가치 제고 및 임직원 경영성과보상' 이행 여부 밝혀라"고 촉구하며 "국내 기업들도 공시를 하면 이는 주주와 시장에 대한 약속이고, 반드시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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