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미국의 중앙은행이자 사실상 전 세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마침내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연준은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0.50%로 25bp 인상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 따라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한 지 꼭 2년만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청사(연합뉴스 제공)>



연준이 그간 유동성을 너무 과도하게 풀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제부터 신흥국은거시건전성 관리에 만전을 다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연준이 긴축적 통화정책을 실시할 때마다 신흥국은 '퍼펙트 스톰(The Perfect Storm)'에 가까운 위기를 겪어왔기 때문이다.

퍼펙트 스톰은 2000년에 개봉된 재난 영화 제목이다. 어부들이 거대한 파도와 비바람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으로 미남 배우 조지 클루니가 주연으로 나와 당시 꽤 인기를 끌었다. 최근 들어서는 세계 경제의 재침체를 의미하는 시사용어로 더 유명해졌다. 미국 뉴욕대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닥터 둠으로 통하는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자주 사용하면서 월가를 중심으로 회자되고 있다.



◇연준의 긴축은 신흥국에 직격탄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연준의 긴축적 통화정책은 신흥국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연준의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미국채 수익률이 급등하고 있어서다.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지난 16일에도 5.2bp 이상 올라 한때 2.201%를 찍기도 했다. 미국채 수익률 상승은 신흥국 통화 가치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대내외 금리차이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할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뉴욕환시에서 한때 99.082를 기록하는 등 2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달러화가 전반적인 강세라는 의미로 신흥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되더라도 인플레이션 압력은 여전

여기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도 신흥국 경제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종전에 합의하더라도 원자재 가격 상승세를 좀처럼 꺾이지 않을 것으로 진단됐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주요 원자재 수출국인 러시이에 대한 거래상대방 위험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신용을 기본으로 하는 금융시장에서 거래 상대방이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위험인 거래상대방 위험 당사자로 지목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해제되더라도 금융시장에서 러시아를 거래 상대방으로 인정하는 데 상당 기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미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사태 당시에도 거래 상대방 위험을 제공한 전력이 있다.

러시아에 대한 거래 상대방 위험은 종전이 성사되더라도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킬 전망이다. 러시아가 원자재 시장에서 상당 기간 제 몫을 하지 못할 것으로 풀이되면서다. 원자재 시장은 빠른 속도로 이런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톰슨 로이터의 원자재 지수는 지난 석닥동안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최대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원자재 시장 참가자들은 수급 여건이 퍼펙트 스톰을 예고하고 있다며 패닉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봉쇄가 해제되면서 원자재에 대한 수요의 절대 규모가 팬데믹 이전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하지만 공급만 병목 현상으로 견조한 수요를 공급이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에 가동을 중지했던 일부 석유화학 정유시설의 경우 아직도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국제 유가까지 급등하면서 석유 화학 제품을 중심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파문이 전방위로 확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 제재 등으로 공급 시장에서 러시아가 당분간 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원자재 가격 상승을 자극할 요인으로 지목됐다. 당장 러시아산 석유 등에 대한 보험도 가입할 수가 없고 운송 수단을 찾을 수도 없다.

이 같은 사정은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출국, 2위의 석유 수출국, 3위의 석탄 수출국인 러시아를 공급시장에서 퇴출시킬 것으로 풀이됐다.

석유시장에서 러시아가 퇴출되면 당장 공급 압박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이 100만 배럴을 증산하고 이란이 100만 증산에 나설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석유수출기구(OPEC)가 200만 배럴을 증산해도 러시아 공급 물량의 60%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원자력 발전의 원천인 우라늄도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의 경우 원자력 발전용 우라늄의 절반을 러시아에서 조달해 왔다. 이밖에 세계 알루미늄과 구리 생산의 10분의 1을 러시아가 담당해 왔다.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소재인 팔라디움의 경우 러시아가 산이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니켈도 러시아가 세계 5위 생산국이다.

이같은 사정이 세계의 주요 식량인 밀로 넘어가면 더 아찔해진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밀생산국이고 우크라이나는 5위 생산국이다. 두 나라가 전세계 밀생산의 30%를 담당해 왔다. 해당 물량이 전 세계 곡물 시장에서 퇴출될 경우 식량위기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국제 밀가격은 올해들어서만 40% 이상 올랐다.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정치적 결과를 초래

신흥국의 경우 식량난을 포함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2009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한 인플레이션으로 중동의 이른바 재스민 혁명이 촉발된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당시미국 등 서구 선진국은 앞다퉈 제로금리를 채택했고 무지막지한 현금까지 살포해 전세계를 인플레이션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인플레이션은 경제적인 문제이지만 언제나 정치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리먼으로 촉발된 후폭풍은 엉뚱하게도 중동의 독재자들이 속속 꼬꾸라지는 재스민혁명으로 이어졌다. 알제리 사과 노점상의 죽음에서 시작된 중동의 성난 민심은 밀 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고에다 실업난 등으로 고통받던 이집트 민중으로 전파된 데 이어 리비아까지 넘어갔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난 데 이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전 국가원수도 정부군에 쫓기다가 결국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리먼 사태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지금도 권좌에서 국민들에게 철권을 휘두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흥국 입장에서는 그때와 너무 닮은 꼴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이 긴축 통화정책을 통해 던진 돌에 신흥국 처지만 곤란해질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한국도 MSCI 글로벌 신흥국 지수에 편입돼 주요 지수 기준으로는 아직도 신흥국에 속한다.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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