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환웅 기자 =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우리나라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확립된 나라인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조건으로 애국심과 법치를 꼽았다.

권 전 실장이 '우리나라가 어떻게 지금처럼 발전했는지', 그리고 '선진국이 되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라는 질문에 최근 펴낸 책 '내가 살고 싶은 행복한 나라'를 통해 내놓은 답이다.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벤더빌트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영국 런던시티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 1976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을 시작한 뒤 주로 국제금융과 경제협력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재정경제부 제2차관과 OECD 대표부 대사, 국무총리실장(장관)을 역임, 현재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사진 설명 =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

▲ 1949년생이 본 서울 = 1955년 일곱 살의 나이에 처음 서울에 도착한 권 전 실장은 당시 서울역에서 영등포 시장골목까지 가는 길을 '완전한 폐허'라고 설명했다. "용산과 노량진을 거쳐 영등포까지 가는 국도 1호선 길가에 있는 집들은 모두 파괴됐고 길거리에는 수많은 고아와 걸인들이 보였다"고 그는 묘사했다.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OECD 대사로 근무할 때 한국이 소규모 개방경제라고 표현하면 선진국 대사들이 모두 한국은 더이상 작은 후진국이 아니고 세계 중심국 중 하나라고 토를 달았다"며 국제사회의 주요 플레이어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미국 원조기관이 보내온 옥수수 빵을 학교에서 받아 동생들과 나눠먹던' 초등학생의 눈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정책심의기구인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국무총리실장의 시각에서 우리나라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권 전 실장은 그 비결로 사람과 수출을 꼽았다.

근본적으로는 "근면하고 성실하며 창의적이고 두뇌가 뛰어난" 한국 사람의 자질이, 그리고 전략 면에서는 개방 정책에 따른 적극적인 세계진출이 좁은 국토와 변변찮은 부존자원에도 경제개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 소규모 개방경제 = 이 책에는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가공무역 중심의 성장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와 재정건전성을 여타 선진국보다 더욱 강하게 관리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권 전 실장은 우리나라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 개방과 경쟁으로 당당하게 세계와 마주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옛날 어느 곳에 3개의 가게가 나란히 있었는데, 왼쪽 가게가 '최고의 상품'이라는 간판을, 오른쪽 가게가 '가장 싼 가격'이라는 간판을 내걸자 가운데 가게는 '여기가 입구'라는 간판을 걸어 경쟁에서 이겼다. 왼쪽이 일본, 오른쪽이 중국이라면 가운데 가게는 한ㆍ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한국"이라며 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교육시스템에도 교원평가제도와 같은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일반의약품을 슈퍼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회 각 분야에 드리워진 경쟁을 제한하는 울타리를 혁파해야 우리 사회가 새로운 발전의 원동력을 찾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 복지 논쟁 =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숙명은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보다 재정건전성에 더욱 민감하도록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대외개방도가 높은데다가 기축통화국이 아닌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생겨 달러조달이 힘들어지거나 불가능해지면 그 충격은 우리 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일 것이기 때문이다.

권 전 실장이 분석한 우리나라의 복지지출 구조는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그는 "한국의 복지지출이 선진국들보다 적은 이유는 노령 및 건강 관련 지출이 적기 때문"이라며 조세연구원과 KDI 등의 연구를 인용해 "우리나라의 공공사회지출 규모가 2010년 GDP대비 8.8%에서 2050년 20.8%로 늘어나고, 국가채무가 2050년 GDP 대비 141.4%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복지는 현대사회의 일종의 선(善)이라고 인식되면서 매우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감성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의 중대사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부담ㆍ복지수준ㆍ재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권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에 대해서도 "선거 공약을 100% 다 지키는 나라는 없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연합인포맥스와의 통화에서 "약속을 했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지킬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지키고, 안 되는건 안된다고 시인해야 한다"며 복지 지출 확대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애국심과 법치 = 권 전 실장은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력에 더해 애국심과 법치 등 선진국형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 인간에 대한 존엄 등 대한민국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공동체적인 가치에 주목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우리 국민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널리 알려 애국심을 고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했던 맹목적인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존립하고 있는 공동가치에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둔 애국심이 있어야 우리 군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수 있다"고 권 전 실장은 강조했다.

권 전 실장은 또 법치주의 확립과 신뢰야말로 불필요한 갈등에 낭비되는 에너지를 국가 발전에 모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밤잠 안 자고 일을 열심히 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속이지 않을까, 정부정책이 갑자기 바뀌지 않을까 하는 등 불필요한 걱정에 에너지를 많이 쓴다"며 "사람들 사이에 약속과 계약이 지켜지고 법치주의가 확립되면 필요도 없는 곳에 많은 에너지를 써서 발전이 늦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전 실장은 "법치주의를 통해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들면 사회구성원이 서로의 행동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 있고, 사회적 갈등도 법에 근거한 조정시스템을 따라 자연스럽게 표출돼 사회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우리 사회의 구성원 개개인이 법과 원칙을 존중하고, 법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됨으로써 법치주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wwchoi@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