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국민연금이 약 5년 만에 환헤지 전략 변경 방침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헤지 비율 달성 시점 등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외환시장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국민연금은 외환시장 상황별로 이행해야 하는 환헤지 비율과 시점 등 세부 사항을 결정했지만, 이를 대외적으로 밝히지는 않기로 했다.

환헤지 전략을 공개하지 않는 일본공적연금(GPIF) 방식을 일부 차용한 셈인데, 협소한 국내 외환시장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이 장기적으로 GPIF식으로 갈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모호한 연금의 환헤지 전략…'시나리오 공개 불가'

21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시장 상황에 따라 한시적'으로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현재 0%에서 '최대' 10%로 올린다고 결정했다.

국민연금의 이런 발표는 이전 헤지 전략 변경 당시와 비교하면 차이점이 크다. 지난 2015년 연금이 환오픈으로의 전환을 발표할 당시에는 구체적인 기존 헤지 감축 스케줄 등이 공개됐었다.

연금은 당시 2017년부터 2018년 말까지 월별 균등한 규모로 기존의 환헤지를 풀겠다고 밝혔다. 월별로 언와인딩 될 스와프 포지션의 규모 등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체적인 전략적 헤지 비율을 0%에서 최대 10%로 올리기로 했다는 점을 공개했을 뿐 구체적인 이행 시기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시장 상황에 따라 한시적으로 비율을 올리겠다고만 밝혀, 연금의 판단에 따라 탄력적으로 헤지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연금은 달러-원 환율의 수준별로 헤지 비율을 조정할 시나리오를 세운 것으로 파악된다.

환헤지 비율을 월별 1%포인트 등 일정 수준으로 높여 가지만 달러-원이 큰 폭 하락하거나, 다른 통화 대비 독보적으로 원화의 절상 비율이 높은 경우에는 추가 헤지를 중단하는 방식 등의 시나리오가 확정됐다는 것이다.

연금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환헤지 단행 여부를 결정하는 전술적 환헤지와 달리, 이미 세운 시나리오에 따라 의무적으로 헤지 비율을 조정해 나가야 한다.

다만 달러-원이 어느 수준이면 헤지를 중단할 것인지 등의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기금운용위원회 등에 참여한 외부 위원들에도 강경하게 비밀 유지 의무 준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부적 전략까지 공개될 경우 외환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 관련 부처의 설명이다.

◇헤지 전략 공개 않는 GPIF…연금도 따라가나

주요 공적기금의 환헤지 전략은 제각각이다. 헤지 비율 등 전략을 공개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도 혼재되어 있다.

세계최대 연기금인 일본 GPIF는 헤지 전략을 공개하지 않는다.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조치다.

일본보다 외환시장이 훨씬 협소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연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큰 만큼 헤지 전략을 비공개로 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연금의 헤지 전략이 공개될 경우 이를 노린 투기적 거래자들의 '약탈적 거래'가 심화할 수 있는 탓이다.

연금도 향후 중장기적으로 헤지 전략의 비공개 필요성을 내비친 바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황준호 연구원 등이 2021년 공개한 '국민연금기금의 적정 환헤지 정책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연금의 자산이 정체되기 시작하는 2030년께(이행기)부터는 환헤지를 시작할 필요가 있으며, 헤지 전략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황 연구원은 "이행기 발생할 수 있는 약탈적 거래 행위는 기금 수익률에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어 전략적 헤지 포지션의 공개를 중단하거나, 전략적 헤지 포지션을 공언할 경우 평소 대비 전술적 헤지 비율 조정 범위를 의도적으로 높게 설정하는 방안 또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연금의 환헤지 전략을 굳이 대외적으로 공개해야 하는지 자체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공개된 원칙을 기계적으로 따라가기보다는 시장 상황에 맞춰 최선의 방식으로 외환을 운용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이해 전문 인력을 더욱 확충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 제공]

 


jw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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