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수출 부진과 부동산 하강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탓으로 풀이된다.

물가 상승률이 5% 이상으로 여전히 통화정책 목표를 훌쩍 웃돌지만, 향후 점진적인 하락이 예상되는 만큼 경기 상황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다만 달러-원 환율이 재차 급등하고, 공공요금 등 물가 상방 변수도 커지면서 이대로 동결 기조로 전환될 것인지, 아니면 추가 인상이 가능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23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했다. 지난해 4월부터 지난 1월까지 일곱 차례 연속 금리를 인상한 이후 처음으로 멈춰 섰다. 기준금리는 지난 2020년 중반까지 이어진 사상 최저치 0.5%에 비해서는 3.0% 올랐다.

◇5%대 물가지만, 경기둔화 신호…수출·부동산 '걱정'

이번 금리 동결은 시장이 예상했던 결과다. 연합인포맥스가 지난 17일 국내외 금융기관 16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준금리 전망치(화면번호 8852)에 따르면 모든 기관이 동결을 예상했다.

한은이 1월 금통위 이후 동결 신호를 강하게 보냈던 만큼 다른 전망은 많지 않았다.

한은은 1월 통화정책방향결정문에서 이전까지 사용하던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문장을 빼고 "긴축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기준금리가 이미 긴축적 수준이라고도 밝힌 만큼 이를 유지하면서 물가 및 경기가 예상대로 움직이는지 점검하겠다는 의사를 표한 셈이다.

이창용 총재도 1월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이미 금리가 높은 수준'이라거나, 최종금리를 3.75%로 봤던 사람들은 전망을 조정했을 것이라는 등 보다 더 완화적인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한은은 여전히 5%가 넘는 물가도 연말 3% 부근으로 하향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물가의 하락 추세가 뚜렷하다면 통화정책의 시차 등을 반영할 때 추가 긴축보다 현 수준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보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반면 성장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한은은 1월 금통위에서 올해 경제가 기존 성장률 전망 1.7%를 하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표로 확인되는 경기 상황도 좋지 못하다. 연초 수출이 감소세를 지속하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도 하락 속도가 줄기는 했지만, 하락세다.

기획재정부는 경기평가 보고서인 그린북 2월호에서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기업심리 위축이 지속되는 등 경기 흐름이 둔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 만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핵심 인사들은 올해 거시정책의 초점이 물가보다는 경기 방어에 맞춰져야 한다는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환율 복병 급부상…물가 안정도 '아리송'

금통위가 쉼표를 찍었지만, 동결 기조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게 됐다.

달러-원의 급등이라는 변수가 최근 급부상한 탓이다. 달러-원은 연초 1,210원대까지 내리며 하향 안정화되는 듯했지만, 최근 1,300원대로 가파르게 반등하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미국의 고용 및 물가 지표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며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폭에 대한 전망이 상향조정되고 있는 탓이다. 연초에는 연준의 '피벗(금리인하 전환)' 기대가 강했지만, 이제는 기준금리 6%대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은이 금리 동결 방침을 고수하면 양국간 금리 역전폭 우려가 고착화하면서 달러-원이 또 한 번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의 통화정책 차별화 이슈에 따른 달러와 여타통화의 극명한 상반된 움직임이 원화에 투영될 가능성도 있다.

금리 역전이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지난 1월 50억 달러 이상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인 채권자금이 순유출되는 등 자금 흐름에도 불안하다.

그런만큼 한은 안팎에서는 이 총재가 이전의 비둘기파적 발언을 의도적으로 자제하고,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물가 상황도 한은이 동결 방침을 강하게 어필하기는 어렵게 흘러가고 있다. 지난 1월 국내 소비자물가(CPI)는 5.2%로 재반등했다. 여기에 1년 기대인플레이션도 지난 1월에 이어 2월에도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며 4.0%로 올라섰다.

생활물가와 밀접한 가스와 전기 등 공공요금의 인상 요인과 가공식품 가격 상승세 등이 여전한 탓이다.

또 중국의 예상보다 빠른 리오프닝으로 에너지 소비가 늘 경우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 총재도 지난 21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연말에 (물가가)3% 정도로 갈 것을 바라고 예상하고 있다"면서도 "최근 한두 달 사이 굉장히 많은 불확실성이 생겨서 그 기조로 가는지가 관심사 중 하나"라고 말했다.

금융통화위원회 주재하는 이창용 총재
연합뉴스


jwoh@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2시간 더 빠른 09시 50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