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금융권에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각종 비위로 연일 검경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전 정권에서 임명된 수장들에 대한 물갈이 인사가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낙마한 데 이어 사실상 모든 금융지주 회장·행장이 사정 당국의 칼날 범위 안에 들어가면서 금융권은 문재인 정부의 '전 정권 인사 솎아내기'가 어디까지 손을 뻗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연말부터 줄줄이 예정된 금융권 인사가 지난달 끝난 국정감사 이후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지난달 17일 금융감독원 국감에서 채용비리 내부 문건이 공개됨에 따라 연임을 확정 지은 지 7개월 만에 사의를 밝혔다.

지난해 하반기 우리은행 신입 행원 채용 과정에서 사회 유력인사, VIP 고객들의 인사청탁을 받고 특혜채용했다는 것. 검찰은 곧바로 우리은행 수사에 들어갔고 이 행장은 사건이 터진 지 보름 만에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났다.

경찰은 이 행장이 사의를 표명한 3일 KB금융지주도 압수수색을 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연임 관련한 노조의 설문조사에 회사 측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고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인데, 공교롭게도 이 행장의 사퇴와 맞물리면서 윤 회장 거취에 대한 불안도 증폭되고 있다.

윤 회장은 사실상 연임이 확정된 상태로 오는 20일 주주총회 절차만 남아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압수수색으로 연임이 뒤집힐 가능성을 적다고 보면서도 정부가 '눈치'를 준 만큼 오는 20일 임기가 끝나는 사장직이나 공석 상태인 KB국민은행 상근감사직 등에 정부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도 금감원 간부에게 채용 청탁을 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 행장이 채용비리 의혹으로 물러난 만큼 김 회장도 머지않은 시기에 거취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NH농협금융은 다음 달 이경섭 농협은행장의 임기도 만료됨에 따라 후임 인사가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는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도 마찬가지다.

대구·경북 지역 시민단체, 은행노조 등이 박 회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DGB금융 이사회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는 직후 박 회장의 거취를 포함한 경영승계 절차를 시작하겠단 입장이다.

금융권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과 금융회사 CEO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이뤄진 만큼 이번에도 물갈이 의도가 담겨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권의 고질적인 파벌싸움, 지배구조 문제, 노조 반발 및 민감한 사회 이슈 등을 이용해 지난 정권 사람으로 보는 수장들을 몰아내고 친정권으로 분류되는 인사를 앉히기 위한 작업이라는 분석이다.

한 금융지주 임원은 "불과 한 달 사이에 의아할 정도로 많은 일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다"며 "결국 이번 정권도 전 정부와 다를 바 없이 제 사람 심기 인사를 시작한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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