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수ㆍ합병(M&A)과 구조조정 업무에 대한 자문을 주로 하는 입장에서 지난 9일 대법원이 선고한 판결은 신선했다. 대법원이 업무상 배임에 대한 입장을 다시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주식회사와 주주는 독립된 별개의 권리주체다. 회사의 소유 재산을 주주와 대표이사가 임의로 사용했다면 횡령죄다.

만일 회사의 이사가 타인에게 이익을 얻게 하고, 반대로 회사에 손해가 가게 했다면 배임이 된다. 단순히 경영상의 판단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임죄를 면할 수 없다.

다만, 경영자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수집한 정보를 근거로 기업의 이익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면 배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배임이 고의였는지를 인정할 수 있는지는 문제가 된 경영상의 판단이 이르기까지의 경위와 동기, 사업의 내용, 기업의 경제적 상황, 손실과 개연성, 이익 획득의 개연성 등 여러 사정에 비춰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경영자)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한다는 인식과 본인이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이 의도적이었는지 여부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판결은 몇 가지 점에서 기존의 판결에서 명확하게 찾아볼 수 없었던 점을 살피고 판단하고 있다. 필자는 두 가지를 언급하고 싶다.

첫째, 이 판결은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한 계열사 사이에 일정한 지원을 주고받는 거래가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이른바 계열사 간 지원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버린다면, 동일 기업집단 내 계열사가 '자본과 영업 등 실체적인 측면에서 결합해 공동 이익과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는 관계'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직접 사업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기업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여기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기업이 매우 열심히 뛰고, 이들이 경쟁하는 해외의 기업이 얼마나 만만하지 않은 상대인지 매일 실감한다는 점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살벌한 환경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때로는 기업집단의 형식으로 수직, 수평 계열구조를 형성한다. 아울러 사업제휴 형식으로 다른 기업과 시너지를 추구하고 있다.

복수의 기업이 공동 이익을 위해 일정한 위험을 부담하고, 또 일정한 보상을 얻고자 하는 관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런 거래 관계를 단순히 '지원'이라고 명명해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했다고 단정하는 대신, 회사의 공동 이익과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기 위한 정당한 거래 행위일 수 있다는 점을 허(許)했다는 점에서 이 판결을 주목한다.

두 번째, 이 판결은 쟁점이 된 각 거래의 행위를 꼼꼼하게 되짚으면서 각 행위의 내용과 배경, 목적, 진행 경과, 최종 결과 등을 하나하나 검토했다. 그 과정에 있던 당사자의 행동과 이에 따른 추단할 수 있는 의도를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어떤 거래는 당초의 목적과 배경에 따라 실제로 진행됐고, 비록 예상과 다르게 진행한 점이 있지만, 이를 시정하기 위한 진정한 노력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물론, 다른 거래는 당초의 목적과 배경으로 제시한 바를 객관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 판결이 향후 계열사 간 거래 행위에서 사전에 어떤 점을 짚어봐야 하는지, 실행 단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관리해야 하는지, 사후에 어떤 기준으로 마무리해야 하는지 상당히 실제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기업자문을 주된 업무로 하는 변호사에게 업무상 배임의 판단 기준과 같은 난해한 쟁점 관련 소중한 기준을 제시하는 고마운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법무법인 율촌 이진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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