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업계를 대변해야 하는 금융협회가 각종 현안에도 금융당국 눈치 보느라 협회 본연의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민간 출신 협회장이 인맥과 위계의 힘에 눌려 당국과 정치권에 끌려가고 있다며 회의적인 모습이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생명보험사들은 암 보험금, 즉시연금 지급을 놓고 금융감독원과 갈등을 빚고 있지만, 생명보험협회 차원에서의 대응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내달 24일 윤석헌 금감원장과 보험사 CEO 간담회가 예정돼 있지만, 신용길 회장이 이 자리에서 어느 정도 수준으로 언급할지도 미지수다.

협회는 한화·교보생명의 입장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협회장이 즉시연금에 대해 당국에 언급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이번 즉시연금 논란의 근본 원인이 약관부실이며 금감원도 이 약관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다는 잘못이 있다"면서 "협회가 이 부분에 대해 객관적으로 대응해줘야 하는데 가만히 있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보험사 자율 권한인 사업비를 돌려주라 한 것은 미지급금 지급 여부를 떠나 보험업의 근간이 흔들리는 부분"이라며 "앞으로 민원이 있을 때마다 사업비를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빈번해질 텐데 협회 차원에서 당국에 이해를 구하고자 노력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도 은행연합회가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주 52시간 근무와 임금피크제 연장 등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금융노조가 9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나섰지만, 은행연합회는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다른 협회와 다른 게 회원사로부터 임단협 교섭권한을 위임받아 임금과 근로조건 등을 협상한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이 사용자 측 대표로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평가다.

특히 은행연합회장은 임단협 교섭 업무 등을 고려해 금융협회장 가운데 유일하게 성과급을 받는다. 이사회가 연말 성과 평가로 기본급의 최대 50%까지 책정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연봉이 7~8억 원대에 달한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회장이 업권을 대변해주기보다는 금융당국과의 관계 등을 의식한 발언들을 많이 하다 보니 은행장들의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수익성이 악화일로인 카드사들도 여신협회만 쳐다보고 있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가맹점 수수료 이슈가 정치권 포퓰리즘의 대상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협회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답답함을 표출할만한 곳이 협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카드사 사장은 "김덕수 회장이 정치권의 압박을 나름 견뎌내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당장 하반기 수익 급감이 예상되는 마당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며 "최대한 업계 입장을 당국과 정치권에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탈적 고금리 대출 비판을 받는 저축은행들도 저축은행중앙회가 야속하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 고객은 금리 인상, 경기 악화 등에 리스크가 훨씬 더 높기 때문에 시중은행과 동일 기준에서 순이자마진(NIM)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협회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당국 눈치 보느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어 속상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민간 금융협회장들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논란으로 금융협회장 자리가 민간 출신들로 채워졌지만, 금융당국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협회장은 중요한 현안이 터졌을 때 당국과 업계 양쪽에서 압박을 받는 위치"라며 "해당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는 장점이 있지만, 협회는 당국과 협업할 일이 많은데 아무래도 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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