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무력화·소비자보호 약화 우려에 무게 실은 듯

내년까지 사모펀드 관련 CEO 제재 미뤄질 가능성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김예원 기자 = 금융감독원이 우리은행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부실 판매와 관련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중징계 제재를 취소하라는 법원의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에 나선다.

17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날 이런 결정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고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지난 3일 판결문을 정식으로 송달받았기 때문에 14일 이내인 이날까지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에도 이 같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전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감원의 항소 여부와 관련해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 부장판사)는 손태승 회장이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문책 경고 등 중징계 취소 청구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초 시장 친화적 행보를 예고한 정은보 원장이 항소에 부정적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포기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금감원은 여러 차례 내부회의 등을 통해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항소심에서 법적 쟁점을 다퉈볼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금감원이 제기한 다섯 가지 징계사유 중 한 가지만 받아들여지면서 패소한 것은 맞지만, 법원도 DLF 상품선정 과정에서 우리은행이 실질적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기에 법적 다툼의 여지가 남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법원이 판결문의 상당 부분을 우리은행의 내부통제와 관련한 잘못을 지적하는 데 할애했음에도 금감원이 항소 자체를 포기한다면 사모펀드 제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더욱이 이 경우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 대한 중징계 처분도 즉각 취소해야 하는 등 감독기관으로서 더 큰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동일한 제재를 받은 금융회사와 최고경영자(CEO)들이 징계 수위를 낮춰달라면서 줄소송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도 금감원으로서는 부담이다.

정치권과 금융소비자단체 등의 항소요구도 압박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당 소속 의원 12명은 지난 14일 성명서를 내고 "금감원은 손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문책경고 처분 취소 판결에 즉각 항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금감원이 항소를 포기해 1심 판결이 판례로 굳어진다면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 마련과 감독당국의 금융기관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는 사실상 어렵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하는 금융당국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항소를 계기로 잘못된 금융회사들의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효과적인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실련·참여연대·금융정의연대 등 6개 시민단체도 공동성명서를 내고 "금감원이 판결을 통해 금융회사와 임직원에 대한 솜방망이 제재의 빌미로 삼으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즉시 항소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항소로 정은보 원장 취임 초기부터 정치금융 프레임에 갇힐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부담일 수 있다. 정은보 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제재보다 금융권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관계 회복을 기대했으나 자칫 긴장 관계가 조성될 여지도 있다.

사모펀드 관련 중징계건도 쉽게 마무리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금융회사와 CEO에 대한 사모펀드 관련 제재가 내년까지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은 항소 포기시 제재의 무력화와 소비자보호 명분이 약화한다는 데 무게를 더 실었지만, 다시 패소할 경우에는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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