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정원 기자 = 정부가 부동산 대출규제 추가 완화에 나선 것은 정책 목표의 방점을 가계부채 억제에서 부동산 시장 연착륙으로 전환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단기자금시장 경색으로 건설사 등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집 값까지 급격히 하락할 경우 되레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키우는 것에 더해 소비심리 위축과 경기 둔화를 가속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그대로 유지한 데다 금리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8%에 육박한 상황에서 규제 완화 효과가 어느정도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가계부채 관리→시장안정'…규제 정상화 '초점'
정부가 10일 제3차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부동산시장 현안 대응 방안에 따르면 오는 14일부터 부동산 규제지역이 서울과 과천, 성남(분당·수정), 하남, 광명만 남고 전 지역이 해제된다.

투기·투기과열지구 내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도 주택담보대출이 허용되며, 서민·실수요자 대상 주택담보인정비율(LTV) 한도도 기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상향된다.

금리 인상 여파로 거래절벽이 오면서 아파트값이 빠르게 하락하자, 주택시장의 급격한 냉각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동안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과도하게 이뤄진 부동산 대출 규제를 단계적으로 정상화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계부채가 안정화되고 있고 금리 상승 등으로 추가 불안 가능성도 줄어들고 있어 대출 규제 정상화 속도를 당초 계획보다 높일 수 있다고 본다"면서 "규제 지역 내 무주택 대상 LTV을 50%로 단일화하고, 투기·투기 과열 지역 내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담대를 허용하는 방안을 다음달 초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천58조8천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천억원 줄었다. 이사철 수요가 몰리는 10월에 가계대출이 줄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1~10월 전체 가계대출은 1조8천억원 가까이 줄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올 연말 연간 기준 처음으로 가계대출이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가계대출이 줄어든 것은 금리 인상 영향이 크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10월까지 여덟 차례 인상을 통해 2.5%포인트(p) 올랐다.

올해에만 두 번의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을 밟으면서 대출금리도 급격히 뛰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연 5.16∼7.65%, 고정금리는 5.35∼7.37% 수준이다.

한은이 이달 말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큰 만큼 주담대 상단은 조만간 8%대를 뚫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대출금리가 더 오르고, 이에 따라 가계대출 증가폭 둔화 흐름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부동산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금리인상에 따른 거래 급감에다, 레코랜드 사태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우려에 따른 자금 경색이 부동산 경기 침체에 불을 붙였다.

국토부에 따르면 9월 전국 주택 거래량(신고일)은 1년 전보다 60.3% 급감한 3만2천404건에 그쳤다.

올해 누적 거래량은 41만7천79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49% 줄었다. 월평균 거래량은 4만6천422건으로 2006년 이후 최저다.

올해 9월 말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4만가구를 넘어섰다. 전월 보다 27.1%(8천882가구)나 증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리 인상 영향으로 지난해말부터 가계대출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그동안 과도하게 시행했던 부동산 관련 규제를 정상화해 나갈 시기라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서민·중산층 주거 부담 확대 등에 유의해 단계별로 필요한 조치들을 적시에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LTV 완화 약발 안 먹히나…금리·DSR에 시장 '시큰둥'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주담대 허용과 규제지역 내 무주택자 주택담보대출(LTV) 50% 일원화 등을 골자로한 부동산 대책에도 냉각된 부동산시장 심리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당분간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금리인상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데다, DSR 규제가 여전한 만큼 대출 여력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렇다 보니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집 값 하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4월 26억5천만원에 팔렸던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는 이달 초엔 20억2천만원에 거래됐다. 6개월 만에 6억원 이상 빠진 셈이다. 현재는 추가로 하락해 호가가 19억5천만원까지 내린 상태다.

비슷한 위치에 같은 평형인 엘스는 최근 19억원에 거래됐고, 트리지움과 레이크팰리스 등의 호가도 18억원까지 낮아졌다.

송파구 신천동의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LTV 규제 완화를 예고한 이후 급매물은 일부 소화되고 있지만 현재는 매물이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른 상황"이라며 "지난 수년간 집값이 올랐던 당시에는 부동산 대책이 오히려 오름세를 부추겼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의 대출 완화 정책이 오히려 구매자들에겐 추가 하락 시그널로 읽히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제 완화책이 당분간은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년간의 집값 폭등세에 따른 피로감이 여전한 데다, 금리 인상으로 주담대 금리가 7%에 넘어가면서 "당분간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심리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구매를 결정하더라도 DSR에 발목을 잡혀 예상보다 대출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잦다.

소득을 기준으로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DSR이 40%로 묶여 있는 만큼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대출 한도 편차도 심한 편이다.

연봉이 5천만원인 무주택 실수요자가 14억원짜리 아파트를 매입할 경우 DSR 규제 탓에 빌릴 수 있는 돈은 3억5천만원(40년 만기·원리금균등상환) 수준에 불과하다.

연봉이 1억이 넘을 경우 대출 한도는 크게 개선되지만 집 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금리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수요는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LTV 50% 상한에 맞춰 40년만기·원리금균등분할상환 방식으로 8억원을 대출받을 경우 금리 5%를 기준으로 매년 은행에 갚아야 하는 원리금은 4천600만원이 넘는다.

대출금리가 6%일 경우엔 5천300만원, 7%일 경우엔 6천만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규모가 불어난다.

특히, 금융권에선 가계대출 금리가 연내 8% 넘어설 것이란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 기조로 국내와 기준금리 역전이 심화하면서 한국은행 또한 '빅스텝'을 통해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분간은 집값 하락세를 관망하는 것이 수요자 입장에서 유리하다는 평가가 늘고 있는 데다, 실제로 금리 부담을 감수하면서 진입하려는 수요는 크지 않다"며 "LTV 완화에도 DSR 규제가 여전한 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이 DSR 완화와 관련해 신중한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도 침체된 분위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지금 부동산도 연착륙이 중요하다"면서도 "지금 상황에서 DSR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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