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외환당국이 국내 외환시장의 선진화 기치를 내걸고 그동안 걸어 잠갔던 외환시장의 문호를 해외기관 등에 대폭 확대하기도 했다.

당국의 조치는 하지만, 국내 중개사를 통한 거래 및 국내에서의 결제를 바탕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원화의 본격적인 국제화와는 차이가 있다.

국내 은행이나 외국계은행 국내지점 등 국내 기관을 중심으로 원화의 점진적인 국제화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복안에 따른 것이다.

다만 국내 금융기관이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반대로 제한적인 원화의 개방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시장의 평가가 맞서고 있다.

◇외환시장 '선진화'…국제화와는 다르다

7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글로벌 수준의 시장 접근성 제고를 위한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당국은 외환시장의 거래 시간을 우선 내년 하반기 새벽 2시, 장기적으로 24시간 거래 체제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 일정한 자격을 갖춘 해외금융기관(RFI)도 국내 외환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일견 엔화와 유로화 등 국제화된 통화와 같은 수준으로 우리 시장이 열리는 것 같지만, 속내를 보면 다른 점도 확연하다.

먼저 당국은 원화의 외환거래 수행 기간을 국내인가 외국환 중개회사로 한정할 방침이다. 해외금융기관들도 현물환 거래는 서울외국환중개나 한국자금중개 등 국내 중개사의 시스템에 참여해 거래해야 한다. FX스와프 거래도 9개 국내인가 중개사를 거쳐야 한다.

국내 중개회사를 통한 거래 확인이 있어야만 결제가 진행된다.

또 RFI는 국내 금융기관에 원화 결제용 계좌를 반드시 개설해야 하며, 역외에서의 원화 결제는 허용되지 않는다.

글로벌통화의 경우 민간 외환중개사를 통해 자유롭게 거래하고, 역외에서도 결제가 가능하다.

당국이 이처럼 원화의 '국제화'가 아니라 '선진화'를 택한 것은 외환거래에 대한 당국의 모니터링 필요성 등이 여전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원화 국제화로 바로 나아갈 경우 자칫 원화 거래의 주도권을 해외금융기관들에 손쉽게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당국은 같은 맥락에서 글로벌 중개사인 EBS를 통한 달러-원 차액결제선물환(NDF)의 역내 기관 거래 허용 등의 문제에서 신중한 입장을 견지 중이다.

국내은행이나 외은지점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센티브도 제공키로 했다.

RFI가 국내 외환시장 선도은행을 통해 신고나 보고 등의 업무를 위탁하는 경우 선도은행으로부터 원화차입 신고의무를 면제한다.

또 본·지점간 거래는 국내 외국환중개회사를 통하지 않은 직거래도 허용키로 했다. 국내 지점을 둔 해외기관에 혜택을 주겠다는 의미다.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원화 기반 비즈니스인 만큼 국내 기관을 중심으로 시장을 키워나가겠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은행 버틸까 vs 원화 국제화 못 미쳐

국내 외환시장이 당국의 바람대로 국내 기관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는 엇갈린 견해도 적지 않다.

특히 글로벌 은행 본점과 함께할 외은지점이 아닌 국내 시중은행이 이들과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당장 국내은행의 경우 향후 시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API 시스템 도입에서 글로벌 은행보다 한참 뒤처진 상황이다. 시중은행의 경우 API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 곳은 현재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뿐이다. 다른 곳은 아직 개발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해부터 약 1년간 운용했고, KB는 올해 막 첫발을 내디뎠다. 호가 생성이나 반대거래를 위한 거래 알고리즘 등에서 글로벌 은행에 아직 비할 바가 못 된다.

글로벌 은행의 API 거래 시스템이 국내 기업을 잠식해 나갈 경우 시중은행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현재 속도로 시장이 열린다면 국내 은행이 해외 고객의 확보는 고사하고, 국내 영업기반조차 잃어버리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대로 이번 조치가 원화의 국제화를 바랐던 측면에서 볼 때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본적으로 역내 증권 대한 투자 등 기존 원화 활용의 범위를 뛰어넘는 조치가 아닌 데다, 역외에서 원화 관련 상품을 만들어내고 투자하는 데까지도 한계가 있는 탓이다.

외환시장의 한 전문가는 "원화의 무역결제 비율을 높여 나가는 것이 중요한 데 기본적으로 원화의 역내 결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거래 시간을 늘리고, 참여자를 일부 확대한다고 해도 지금과 큰 차이를 보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딜링룸 전경
연합뉴스

 


jw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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