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과점체제 개선 위해 SVB 벤치마킹하다 '불똥'
특정산업 리스크 불거질 시 금융시장 전반 영향…부작용↑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정원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으로 특화·전문은행의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의 과점 체제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 중인 소규모 전문은행 도입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행 산업 문턱을 낮춰 새로운 경쟁자를 등장시키고 '메기효과'를 유도해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취지였으나 SVB 사례처럼 건전성 문제가 발생하면 금융산업 전반으로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소규모 은행의 취약 구조와 은행 난립으로 인한 부작용을 충분히 연구한 이후로 도입을 늦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화·전문은행 부작용 부각…추진동력 상실되나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는 은행권 경쟁 촉진을 위한 방안으로 스몰라이선스·챌린저 뱅크 등 은행 진입 규제 완화 방안을 제시했다.

지금까지는 은행업은 단일 인가로 되어있으나 인·허가 단위를 나눠주게 되면 특정 분야에 경쟁력 있는 특화은행을 활성화할 수 있고, 진입 장벽도 완화돼 은행의 과점 체제도 깰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번에 파산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파장을 주고 있는 SVB 또한 국내 금융당국의 벤치마크 대상 중 하나였다.

지난 1983년 설립된 SVB 모델은 실리콘밸리 내 벤처캐피탈의 자금지원 등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빠르게 규모를 키워왔고, 자산 기준 16위권에 오르면서 사실상 대형은행으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다.

특화된 분야에 강점을 가진 신규 플레이어가 진입할 경우 은행 서비스 경쟁 촉진은 물론 금융서비스 수수료 인하를 기대할 수 있는 데다, 소상공인이나 벤처기업 등에 대한 신용평가 고도화 효과도 도모할 수 있다는 점도 이러한 분위기에 힘을 실었다.

특히 SVB의 경우 '전문성'을 바탕으로 특화 영업을 지속하면서 글로벌 금융사들과도 어깨를 견줄 만한 입지를 구축했다는 게 국내외의 대체적 평가였다.

하지만 SVB가 돌연 파산하면서 한순간에 롤모델에서 부작용의 사례가 되어버렸다.

'신규 플레이어 도입' 중에서도 스몰라이선스와 소규모 특화은행의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것은 금융당국의 일관된 입장 중 하나였는데, SVB 사태가 터지면서 추진 동력이 상실된 셈이다.

특히 SVB 파산의 주요 원인이 지난해 급격한 금리 인상에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글로벌 환경 영향을 많이 받는 국내 금융시장에는 적합하지 않은 모델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때마다 자금이탈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고, 그만큼 시스템 리스크에 크게 노출돼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수 있다.

◇"급하게 추진할 사안 아니다"…신중 모드

금융당국이 특화은행 모델의 한계에 대해 검토·분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지난 3일 열린 '제1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실무작업반' 논의를 진행한 뒤 미국의 특수목적은행과 영국의 소규모 특수은행 및 챌린저 뱅크, 호주의 제한적 인가 은행, 스위스의 라이트 뱅킹 라이센스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의 결과를 공개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전문가들은 "미국 SVB의 경우 별도 인가 단위에 따른 특화은행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특화은행처럼 기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내 16위, 실리콘밸리 내 1위 은행이었던 SVB는 자산액 300조원, 대출액 99조원, BIS비율 15.4%였던 대형사다.

벤처기업과 임직원의 예·적금을 받아 다시 유망 벤처에 대출해 주고, 금융중개와 지분투자 등에 초점을 맞춰 비즈니스 모델을 관리해왔다.

당시에도 이러한 모델에 대한 우려와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했다.

특화은행의 경우 충분한 규제 완화 없이는 수익성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과 특정 여신에만 집중하는 은행의 경우 자산 건전성 측면을 다른 부문의 여신으로 상쇄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번 SVB 파산 사태가 유동성 위기에 처한 벤처기업들의 '뱅크런' 여파로 촉발됐던 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SVB 파산이 은행권 영업 관행 개선 작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성급하게 추진할 사안은 아니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규제를 완화하고, 새롭게 인가를 내는 것은 소비자 효용과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은행 사업에 미치는 파장 등을 정밀하게 검토해 추진할 사안"이라며 "여러 우려가 있는 만큼 충분히 논의하고 건전성 위험 등을 담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을 우선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굳게 닫힌 실리콘밸리 은행 본사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2023.3.12 taejong7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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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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