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이했다.

이 총재는 포워드 가이던스의 도입 등 통화정책에서의 변화는 물론 대내외적으로 많은 영역에서 기존의 한은 총재들이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행보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아직 혼선도 적지 않게 겪는 중이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은행 내외의 평가는 나쁘지 않다.

◇포워드 가이던스 도전…혼선 있지만 긍정평가

이 총재 취임 이후 한은의 가장 큰 변화는 향후 금리 정책에 대한 포워드 가이던스다. 이 총재는 향후 금리 인상 폭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예고하는 방식부터, 이른바 '한국판 점도표'라는 평가받는 금통위원들의 예상 최종금리 수준 공개 등의 변화를 꾀했다.

일례로 이 총재는 지난해 7월 사상 처음으로 50bp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후 "향후 금리 인상 폭은 베이비스텝"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향후 금리 인상 폭을 직접적으로 제시한 파격이었다.

이 총재는 또 한은이 관례로 사용해 온 '당분간' 등의 표현에 대해 '향후 3개월'로 시점을 명시하기도 했다. 공공연히 알려진 내용이긴 하지만, 총재가 이를 직접 확인하는 경우는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변화의 백미는 각 금통위원이 생각하는 최종 금리 수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 총재는 최근 매 금통위 이후 회견에서 몇 명의 위원이 어느 수준을 최종금리로 보는지 공개하고 있다.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금통위의 견해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셈이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주요국 중앙은행에서는 하나의 통화정책 수단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못했었다.

제로금리가 아니었던 점 등 여건의 차이도 있지만, 예상과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경우에 나올 비판을 피하고자 하는 한은의 '본능'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총재의 포워드 가이던스도 적지 않은 혼선을 빚었다. 단적으로 '앞으론 베이비스텝'이라고 했던 예상 경로는 지난해 12월 또 한차례 빅스텝으로 어긋났다.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이 총재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선제 안내를 '약속'으로 받아들인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그럼에도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시도하는 변화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국내외 금융계 '셀럽' 등극…일각 비판에도 '자신만만'

이 총재가 차이를 보이는 또 하나의 면모는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국제기구, 산업계 등과 '광폭'에 가까운 소통에 나선다는 점이다.

국내적으로 이 총재는 이른바 'F4'로 불리는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매주 일요일 비공개 회의를 실시하고 있다. 금융 관련 부처뿐만 아니라 산업부 등 다른 정부 부처 수장과도 회동한다. 대통령이나 총리 주재의 토론회에 종종 참석하는가 하면, 국회에서 강연도 했다.

모두 이전 총재들에게서는 볼 수 없던 행보로, 중앙은행 총재인지 정부 부처 장관인지 헷갈린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런 만큼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물가 안정 시급성에 모두가 동의했던 지난해와 달리 물가와 경기가 엇갈린 행보를 보이는 올해는 정부와 정치권의 통화정책에 대한 압력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총재는 하지만 정부와의 활발한 논의가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해칠 일은 없을 것이란 자신감을 표했다. 정부와 충분히 협의하지만, 결정은 금통위가 독립적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국회에서 통화정책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결과를 보시고 판단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외에서의 행보도 전례 없는 수준이다. 이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주요 국제회의에서 단골 연사로 활약하는 중이다.

한은 총재로는 처음으로 잭슨홀 회의에서 세션 발표를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에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주제 토론 패널로 나섰고, 주요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과 함께 중앙은행의 물가 대응 방안을 두고 토론했다.

이 총재의 활발한 대외 활동은 한은 내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한은 노조가 이 총재 취임 1주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은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갔다고 본 직원은 60%에 달했다.

다만 해외에서 내놓는 메시지가 금통위 기자회견 발언과 차이를 보인 경우도 있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의 부작용도 없지 않다.

◇내부 경영은 '글쎄'…개혁 성과 아직

이 총재 이후 한은 내부적으로도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했다.

이 총재는 '조사역이 총재에게 연설문이 실망스럽다고 말할 수 있게 하겠다'는 등 직원 하나하나가 주체적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는 조직 문화 장착을 주창하면서 제도에도 변화를 줬다.

국-부-팀제를 도입해 업무 권한을 하방 위임하고, 간부급과 직원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업무발표 겸 토론회 등의 제도도 도입했다.

직원들이 총재나 금통위원과 직접 만남을 요청할 수 있는 창구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의 성과는 아직 체감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국부팀제의 경우도 취지와 달리 오히려 결제 단계가 늘어나면서 업무의 비효율성이 더 커졌다는 토로도 곳곳에서 나오는 중이다. 각종 토론회 준비 등으로 업무 부담만 커졌다는 볼멘소리도 없지 않다.

특히 이 총재가 취임 초 임금 등 직원 처우 개선에 나서겠다고 했던 것에 비해 가시적 성과는 아직 없다.

그런 만큼 한은 내부에서는 실망감도 적지 않은 모습이다. 한은 노조 설문에서 이 총재 취임 이후 직원 처우가 적절한 수준으로 개선됐냐는 질문에 대해 90% 이상이 그렇지 못하다고 답했다. 내부 경영 전반에 대한 평가에서는 못 한다고 답한 직원이 46%로 잘한다고 답한 직원 14%보다 훨씬 많았다.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 기자간담회 하는 이창용 총재
연합뉴스

 


jwo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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