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이사진에 배상 시뮬레이션 결과 보고할 듯
'배임 우려' 사외이사 설득 쉽지 않을 듯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은행권이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에 대한 자율배상 여부를 두고 다음주부터 이사회를 열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간다.

은행별로 배상액이 수천억원에서 조단위에 이르는 상황이어서 사외이사들을 설득하는 게 첫 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자율배상이 배임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불완전판매에 대한 법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자율배상 여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여전히 은행들에는 쉽지 않은 숙제가 되고 있다.

자칫 자율배상을 결정할 경우 이사회의 책임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여전해 이사회 승인까지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SC제일은행 등 5대 은행은 다음주 정기주주총회 후 열리는 임시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에게 홍콩 ELS 손실 관련 보고를 할 예정이다.

오는 20일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21일 신한은행과 국민은행, 22일 우리은행, 29일 SC제일은행 정기주총과 이사회가 예정돼 있다.

이날 이사회는 새롭게 구성된 이사진의 상견례 겸 이사회 의장 선임, 이사회 내 위원회별 위원장 및 위원 선임 등을 진행하는 자리이지만, 거액의 자율배상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만큼 관련 논의가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사외이사들에게 홍콩 ELS 손실 배경과 손실 예상 규모를 보고하고, 최근 금융당국이 발표한 배상기준안에 따른 재무제표 영향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홍콩 ELS 손실 사태가 불거진 후 배상과 관련한 이사회 첫 공식 논의가 되는 셈이다.

금웅감독원은 다음달부터 홍콩 ELS와 관련한 분쟁조정 절차를 개시할 예정인데, 은행들이 최대한 신속하게 자율배상에 나설 것을 독려하고 있다.

현재 은행들은 내부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른 예상 총배상 규모를 산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금감원이 추산한 홍콩 ELS의 올해 하반기까지 예상 추정손실은 5조8천억원에 이른다. 업계가 추정한 은행권 배상액은 1조5천억~2조원에 정도다.

홍콩 ELS 판매액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8조1천200억원)의 경우 은행에 적용되는 배상비율을 30~40%로 볼 경우 배상 규모만도 1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급 배상액에 이사회의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불완전판매에 따른 제재와 과징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율배상에 나서야 하는 분위기이지만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 있어 결정이 쉽지 않다.

자율배상 이후 주주들이 경영진 등 이사회를 상대로 손실 배상에 따른 배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자율배상을 한 것이 은행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에 따른 자율배상이 배임과 무관한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외국인 주주비율이 60∼70%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설명·설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사외이사는 "주주 입장에서는 거액의 배상으로 회사 수익이 줄고 배당이 쪼그라들게 되면 얼마든지 배임 문제를 걸고 넘어질 수 있다"면서 "회사와 주주 간 문제는 당국 말만 믿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외이사도 "파생결합펀드(DLF)처럼 문제 있는 상품을 판매한 것도 아니고 불완전판매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분조위를 통한 배상이 합리적"이라면서 "정부가 배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이상 (자율배상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은행들이 이사회 동의를 받아 자율배상이 실제로 이뤄지기까지는 2~3개월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은행 임원은 "지금은 먼저 나서기보다 대세를 따라가는 게 안정적이라는 분위기다"라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은행 이사회 간 눈치싸움도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정의연대 등 '금융당국 감사, 은행은 원금 보상'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금융정의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열린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2024.2.15 dwi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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