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대한민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모처럼 이름값을 했다. 지난 19일 발간한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서다. 한은은 이전에도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의제설정과 질적 수준에서 기존 보고서를 압도했다.

특히 이번 보고서는 금융안정기능을 보강한 한은법 개정 이후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한은 집행부가 혼신의 노력을 다한 흔적이 역력했다. 한은법 개정에 따라 법정 보고서의 지위를 얻었다는 점도 보고서의 영향력을 배가시켰다.

우선 의제설정 자체가 다소 도발적이다 싶을 정도로 과감했다.

한은이 집중한 가계부문의 부채에 대한 분석은 기존의 유사한 연구보다 입체적이었다.

특히 가계 전체보다는 50세 이상의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채 부문을집중적으로 분석한 대목이 돋보였다. 한은은베이비 부머의 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빨라 내수침체가 지속되면 거덜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체 가계대출에서 베이비부머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3년에 비해 13.2%나 상승한 데 비해 베이비부머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은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기(2005~2007년)에 고연령층이 수도권 고가주택담보대출을 크게 늘렸지만 이후 주택매도가 어려워져 주택처분을 통한 대출금 상환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분석은 시사하는 바 크다.

최근 들어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은퇴자들이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창업자금을 마련하는 사례도 늘어나5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이 지난 2008년 47.1%에서 2011년 53.9%로 높아졌다는 분석도 눈길을 끌었다.

한은은 또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부득이하게 도입한 저금리 기조가 한계기업의 퇴출을 지연시키고 있지만 내수 부진이 지속될 경우 한계기업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계기업 퇴출도베이비부머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베이비 부머들이 은퇴하면서 음식숙박업 등을 중심으로 창업에 나섰지만 부동산과 임대업, 음식숙박업, 건설업종의 소규모 기업의 경우 한계기업 비중이 60%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은행권의 배당이 너무 많으니 금융 당국이 은행권의 자본 확충을 지도해야 한다고 지적한 내용이나 외은본점의 원화 유가증권 직접 투자가 증대할 우려가 있으니 정부 당국이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 내용 등도 유용한 분석이다. 정부 당국을 상대로 제대로 정책 대응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등 다소 도발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은이 그동안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탓에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지만 이번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서울 금융시장에서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한 모습이다.(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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