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제유가가 국제금융시장의 판을 흔든다. 배럴당 40달러 밑으로 추락하면서 환율·채권·주식 등 주요 금융지표 흐름이 뒤바뀐다.

유가가 내려가고, 석유관련주들이 폭락하면서 뉴욕 주식시장도 하락하는 연쇄적 악순환이 이어진다. 뉴욕증시 하락은 세계 증시의 약세를 유발하고, 이것이 환율에 영향을 줘 달러 강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유가가 반등하면 주식시장도 살아나고 달러는 약세를 띤다.

최근 몇 년간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하던 유가가 시장의 중심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이제 증시는 물론, 외환, 채권시장까지 국제유가를 쳐다보지 않고는 거래할 수 없는 시절이 왔다.

앞으로 유가는 어떻게 될까. 상당기간 저유가 시대가 지속될 전망이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체제에 들어서면서 공장 가동이 줄고, 세계 물동량도 감소하고 있다. 석유의 필요성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석유를 퍼내 수출하려는 나라는 계속 늘어난다. 미국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석유수출 금지를 해제해 세계 시장에 석유를 내놓기 시작했고, 이란은 경제제재가 해제돼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석유를 수출하게 된다. 하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현재의 과도한 생산량을 줄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감산 협상은 번번이 실패로 끝나기 일쑤다. 미국 셰일가스 산업 역시 유가가 오를 만하면 항상 발목을 잡는 변수다.

저유가 체제는 복잡한 국제정세의 산물이기도 하다. 강대국 간의 정치지형, 중동의 복잡한 사정, 미래 산업과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 등 다양한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온 것이다. 그 중심에 세계 패권을 장악하려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지난 몇 년간 '피봇 투 아시아'를 기치로 중국을 견제하는데 모든 외교력을 집중해 왔다. 이를 위해 미국은 전략적으로 중동에서 발을 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란 경제제재 해제 등 관계 개선 조치가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과 손을 잡으며 신밀월 시대를 여는 러시아에 대해서는 경제 제재를 통해 돈줄을 막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병합이 제재의 표면적인 이유지만, 러시아 석유기업과 국영 방위산업 기업들을 제재해 러시아의 경제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수출 비중이 60%를 넘는 러시아에 유가 하락은 치명적이다. 미국의 석유수출 금지 해제는 러시아 입장에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미국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무산시키려 총력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월드컵 특수가 러시아 제재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어서다.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낙마한 것도, FIFA에 대한 조사를 미국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이 주도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미래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역시 미국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앞으로 10년 안에 휘발유로 가는 자동차 대신 전기자동차가 도로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의 활용도가 더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는 곳은 다름 아닌 실리콘밸리다. 미국이 40년 만에 석유수출 금지를 해제한 것도, 전략적 요충지인 중동에서 발을 빼는 것도 이 부분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제반상황을 종합해 볼 때 국제유가는 장기간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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