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처체계) 배치 이후 중국의 경제보복이 지속하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의 경제수장이 마주 앉지 못하는 상황이 1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중(對中) 특사 등을 통해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 보려는 정치적 접촉은 일부 있었지만, 양국의 경제수장이 머리를 맞대고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사드뿐 아니라 올해 10월 만기가 돌아오는 양국 간 통화스와프 만기 연장과 관련한 협상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15일부터 사흘간 제주도에서 열리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연차총회에서 양국 재무장관 양자회담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아직 일정조차 정해지지 않아 또다시 불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획재정부 고위 당국자는 16일 "양국 간 양자회담 성사를 위한 실무 차원의 접촉 시도가 있었지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양국 간 여러 현안이 있어 경제수장이 만나는 자리를 추진하고는 있지만, 우리나라가 이번 연차총회에서 의장국을 맡고 있어 일정 조정이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경제부총리가 중국 측 파트너인 재정부장(재무장관 격)과 양자회담을 한 것은 지난해 7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가 마지막이다.

당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러우지웨이(樓繼偉) 재정장관과 만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세계 경제 불확실성 심화에 따른 양국 간 공조체제 강화 등을 두고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중국 재정부장이 러우지웨이에서 샤오제(肖捷)로 전격 교체된 이후 양국 경제수장이 마주 앉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올해 3월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중국 측에 양자회담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사드 배치로 중국의 경제보복이 극도로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경제적으로 해법을 찾아보려던 우리 정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당시 유일호 부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취임 축하 인사를 전하면서 전임자인 러우지웨이 장관과 회의를 많이 했다고 슬쩍 얘기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드 배치 이후 지속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보복에 따른 우리 경제의 피해는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올리면서도 중국의 무역제한 조치를 주요 불안 요인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한은은 중국의 경제보복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0.2%포인트 떨어뜨리고 고용을 2만5천 명 정도 감소시킬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에 제주에서 열리는 AIIB 연차총회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하는 국제 행사다. 글로벌 경제ㆍ금융시장의 핵심 인사들과 마주하는 첫 데뷔 무대인 셈이다.

김 부총리는 이번 행사에서 진리췬(金立群) AIIB 총재와 인도네시아, 호주, 이란, 싱가포르, 이집트 등 회원국 대표들과 양자회담을 한다.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 샤오제 중국 재정부장과의 공식적 만남 일정은 없다.

이번에 양국 재무장관 간 양자회담이 불발될 경우 통화스와프 만기 연장과 관련한 협상에서도 큰 진전을 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일호 전 부총리가 지난해 4월 바하마에서 열린 미주개발은행(IDB) 연차총회에서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장과 만나 통화스와프 만기 연장 협상에 사실상 합의했지만 이후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4월 1천800억 위안 규모로 중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은 이후 2011년 11월 규모를 3천600억 위안(약 61조 원)으로 확대했다.

우리나라가 여러 나라와 맺은 통화스와프 중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큰 규모다.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 5일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한중 통화스와프는 역내 시장안정과 금융협력 제고 측면에서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만큼 적절한 시기에 연장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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