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약칭 금융위원회법) 제18조를 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의 업무·운영·관리에 대한 지도와 감독을 한다'고 돼 있다. 제24조(금융감독원의 설립)는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원회나 증권선물위원회의 지도·감독을 받아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 등을 수행한다'고 명시했다. 제29조 2항은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나와 있다. 금융당국으로 불리는 금융위와 금융감독당국으로 불리는 금감원 사이의 관계는 이렇듯 법에서 구체적으로 적시해 놨다.

반복해서 언급되는 '지도'와 '감독'이란 말은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한다. 두 기관은 그간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긴 했어도 법률상, 현실적으로 보면 '수직적 관계'인 것이 분명하다. 금융위원장을 장관급으로, 금감원장을 차관급으로 직급을 정해놓은 것도 어찌 보면 두 기관의 실체를 명확히 해 놓은 장치인 셈이다. 물론 금융위원장이 금감원장의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업무상 역할과 책임은 직급에서 정해놓은 것만큼 차이가 있다. 금감원은 은행법과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등 각종 금융권역별 관련 법에 명시된 주요 금융회사를 상대로 막강한 검사권을 갖는다. 하지만 금융위의 지도와 감독하에서만 적법한 권한이다.

이렇듯 두 기관의 역할과 책임은 대한민국 금융시장의 주춧돌과 같다. 규제를 풀어 금융산업과 금융회사의 성장과 증진을 촉진할 수도 있고, 강력한 규제를 부과해 규율체계를 강화할 수도 있다. 감독권의 방향 설정에 따라 시장과 금융회사의 목을 조일수도, 숨통을 터 줄 수도 있다. 이 모든 역할과 책임의 근저에는 금융산업과 금융시장의 안정화, 궁극적으로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금융소비자의 피해를 차단하려는 목적이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 두 기관과, 이들 기관을 운영할 책임을 지는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은 막강한 권한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갖는 셈이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의 힘이 막강한 만큼 이들이 내놓는 메시지 역시 막강하다. 금융시장과 개별 금융회사에는 잔잔한 물결이 될 수도, 엄청난 높이의 파도도 될 수 있다.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사, 카드사 등 금융회사들은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던진 말 한마디 한마디를 주목한다. 의미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전략과 대책도 수정한다. 그런데 전제는 균형된 메시지다. 메시지의 내용뿐 아니라 총량도 균형이 필요하다. 두 금융당국 수장의 역할 분담은 어느 정도로 돼 있는지, 메시지의 수위와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체감은 다르다.

그런데 그러한 균형은 오래전에 깨졌다. 금융위원장은 말이 너무 없고, 금감원장은 말이 너무 많다. 언론이 전하는 뉴스만 보면 차이는 더 확연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올해 들어 언론 앞에서 직접 현안에 대해 질문을 받고 답을 한 것은 지난 1월 5일과 27일 딱 두 번이다. 탄력 점포를 운영 중인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를 방문해 기자들과 만난 것(5일)과 대통령 업무보고를 앞두고 정부서울청사에서 사전 브리핑을 한 것(27일)이 전부다. 공식적인 각종 회의에서 현안에 대해 언급한 것이 보도자료 형태로 나오거나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발언한 것을 제외하면 언론이 질문을 할 기회는 이후 없었다. 금융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김 위원장의 2~3월 일정을 보면 언론과 대면할 수 있는 일정은 아예 없다.

반대로 이복현 금감원장은 언론과 만나 현안을 설명하는 일정이 너무 많다. 1월에만 은행장, 사모펀드 운용사 최고경영자(CEO), 보험사 CEO, 가상자산업계 관계자 등을 만났고, 2월과 3월에는 빅테크 CEO와 관계자는 물론 해외 주요 투자자, 자산운용사 CEO, 증권사 CEO를 만났다. 최근에는 판교 카카오 본사와 부산의 BNK부산은행을 찾아 업계 간담회도 했다. 이런 자리가 끝난 뒤에는 어김없이 언론 앞에 섰다. 현안에 대해선 기자회견 수준으로 길게 자신의 입장을 내놨다. 통상 질의응답 시간은 15~20분, 길게는 30분 가까이도 이어졌다.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는 답변도 아니다. 껄끄러운 질문이더라도 피하지 않는다. 직설적이고 상세하다. 그렇다 보니 가끔 논란도 부른다.

이렇다 보니 금융시장과 금융회사들은 이복현 원장의 메시지를 정부의 입장으로 생각한다. 이 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이다 보니 이 원장의 말을 '용산의 뜻'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금융위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궁금해 하던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젠 이 원장의 메시지로 가름하는 버릇도 생겼다. 얼마 전에는 '차기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 검사장"이라는 찌라시가 금융시장에 돌기까지 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시장과 금융회사 관계자들이 현재의 금융위와 금감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최근 금융당국의 가장 큰 현안은 '은행 과점 깨기'다. 은행 산업은 물론 다른 권역의 금융회사에 대변화를 초래할 매우 무거운 주제의 이슈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주제의 이슈가 감독 권한을 가진 금감원장의 입을 통해서만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줄 수 있는 현안임에도 언론 앞에 선 것은 금감원장뿐이다. 불확실한 금융시장과 대변화를 촉발할 수도 있는 금융산업 현안에 대해 언론은 '금융당국 수장' 금융위원장에게 물어볼 게 많다. 대통령 앞에서 '금융 영업사원'이 되겠다고 말한 김주현 위원장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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