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기업들이 역대 최대 실적을 내면 시장과 주주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기업가치가 높아져 주가가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가 커지기 때문이다.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일차적 성과지표는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 등이다. 외형은 얼마나 성장했는지, 비용통제는 어떻게 했는지, 실질적인 영업활동은 괜찮았는지. 그에 따라 주주들의 몫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순익의 양적·질적 상황은 좋은지. 더 나아가 이런 영업활동을 통해 재무적 상황은 얼마나 개선됐는지,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남을 확률은 높아졌는지, 그로 인한 자금조달 및 투자 여건은 좋아졌는지 등을 살피게 된다. 이는 곧 주가와 자금조달 금리 등에 반영되는 게 통상적이다. 이 모든 게 내 돈을 걸어도 될만한 회사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인 셈이다.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 개선 TF 회의' 참석한 은행 관계자들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2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제1차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 개선 TF 회의'에 참석한 이호형 은행연합회 전무(왼쪽에서 네 번째)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김소영 부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3.2.22 kimsdoo@yna.co.kr

지난달 말 이후 코스피에 상장된 4대 금융지주의 주가 그래프를 보면 아이러니하다. 고금리 시기 막대한 예대마진을 통해 역대급 실적을 낸 기업들의 주가 흐름이라고 보기엔 이상하다. 역대 최대 실적을 냈지만 '꼭짓점'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고, 경기둔화 우려로 이익은 줄어들고, 부실률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리스크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정부 리스크'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4대 금융지주가 낸 막대한 이익에 대한 정부의 '질적 평가'가 투자자들에겐 불확실성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금융사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슬슬 발을 빼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이를 방증한다는 평가도 있다.

'막대한 은행 이익의 비밀'에 대해 정부가 내린 결론은 과점이었다. 정부가 내준 제한된 개수의 라이선스를 가지고 이자 장사를 하면서도 사회에 기여하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돈 잔치를 벌였다는 것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부는 여기서 면책될 수 있을까. 현재의 은행 과점체제를 만든 것은 누구일까. 은행이 이자 장사를 한다고 비난하지만, 은행업의 본질은 이자 장사다. 은행이 고객들에 파는 상품은 '돈'이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데 공짜는 없다. 정부 산하의 국책은행과 정책금융기관들도 이자 장사를 한다. 마진을 줄이고 금융 접근성을 높여줄 뿐이다.

은행들이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어찌 보면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부동산값 폭등을 막기 위해 대출 총량제를 실시하면서 은행들에 대출을 줄이라고 했고,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도와주라면서 대출을 늘리라고 했다.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자 은행채를 발행하지 말라고 하고, 예금을 받지 말라고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대출과 예금 금리에 직접적 영향을 준 게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은행들이 이익을 더 내기 위한 약삭빠른 행동했을 개연성은 물론 충분히 있다. 정부의 개입이 모두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시기 시기마다 실물경제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이 나서야 하기도 하고, 금융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은행이 나서도록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 참여했던 은행들을 돈을 많이 벌었다고 '대역죄인'처럼 취급하고 있다.

대역죄인을 교화하기 위해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공공재'라는 프레임과 과점 깨기다. 그런데 이것도 좀 모순적이다. 정부 고위 관료를 지내고 금융권에서 종사하는 한 고위 관계자는 "공공재라는 말은 독과점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과점 체제를 깬다고? 뭔가 이상하다."라고 했다. 흔히 공공재는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서, 시장 충돌이 다소 있더라도 정책 사각지대를 메우려는 목적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민간 은행 자체를 공공재라고 정의를 해 버리니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불쑥 나온 게 과점 깨기다. 일단 타깃을 은행으로 정해 놓기는 했지만 원인 분석도 해법 찾기도 우왕좌왕인 것 같다.

금융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금융산업 경쟁도 평가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말 은행 산업의 경쟁도 평가 결과를 내놨다. 2018년 1차 평가에 이어 2번째로 내놓은 결과였다. 결론은 은행 산업은 '다소 집중된 시장'이라는 것이었다. 금융당국이 말하는 과점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터넷전문은행 출현으로 가계대출 분야에서의 집중도는 완화하고 있다고 봤다. 다만, 신규 은행 진입과 관련해선,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을 지켜본 뒤에 판단해도 될 것 같다고 제언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은행 산업의 메기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어 경쟁도를 높이기 위한 신규 은행 진입은 일단 보류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사실 새로운 플레이어가 시장에 새로 들어오게 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당국도 시장도 모두 다 안다. 자본규제, 주주구성 적격성 판단, 유효경쟁 제고를 위한 규제 설계, 영업행위의 허용 범위 설정과 그에 따른 규제 범위 확정 등 따져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기 위해 사실상의 완전 경쟁 체제로 몰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지적도 새겨봐야 한다. 소비자 편익을 높이기 위해 라이선스의 개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와 규제를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가가 우선이다. 은행은 최종대부자의 보완·중개 기능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구다.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방식의 과점 체제 해소책은 오히려 금융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을 높인다. '쪽수'를 기반으로 한 경쟁 체제는 되레 소비자 편익을 도외시한 규모의 경쟁 체제를 가속하고, 궁극적으로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 시장 진입만 있고 퇴출을 위한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플레이어만 늘리는 방식의 개편은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꼼꼼한 설계가 필요하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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