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MZ세대'는 유통업계에선 놓칠 수 없는 고객이다. 개성이 강한 데다 자발적 의사에 따라 소비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감성을 중시하고,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 유통업계에서는 제1의 공략 대상이다. 일부 대형 백화점은 아예 MZ세대 공략을 위해 매장 자체를 리뉴얼하기도 한다. 1층은 화장품·액세서리, 2층은 여성복, 3층은 남성복, 4층은 스포츠 매장 등으로 구성됐던 천편일률적인 형태의 백화점 매장은 이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어떤 백화점은 아예 몇 개 층에 걸쳐 먹을거리와 다양한 의류 및 액세서리 매장을 모두 다 넣은 팝업스토어로 채우기도 한다. 수십억원을 들여 매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백화점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모험이기도 하다. 하지만 MZ세대의 과감하고 거침없는 소비 성향을 고려하면 베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픽] 연령별 취약차주 수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17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 경제위기대응센터 자문위원장)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30대 이하 청년층 취약차주는 46만명으로 집계됐다. zeroground@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페이스북 tuney.kr/LeYN1

고가의 골프웨어를 거침없이 구매하고, 수십만원짜리 오마카세를 즐기고, 명품 매장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과시성 소비를 하던 이들을 타깃으로 삼은 기업들의 전략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유통업계 등 기업들의 소비 부추김과 이를 추종하는 MZ세대의 소위 '허세플레이션'이 맞물리면서 'MZ 시장'은 쭉쭉 커갔다. 사실 소비 여력만 있다면 개인의 소비 성향을 뭐라고 탓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들의 소비 여력은 장기간의 저금리 속에서 나타난 유동성 버블이 뒷받침한 측면이 크다. 부동산과 주식, 가상자산 등 자산시장의 상승세까지 더해지면서 채무에 대한 부담은 한쪽으로 비켜나 있었다. 가처분소득은 충분해 보였다. 나의 가치에 맘껏 투자해 보자던 욜로(YOLO)를 넘어 거침없는 과시성 소비를 하는 플렉스(FLEX)로 진화했다.

하지만, 세상이 늘 태평성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는 경기 사이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제 지표 중 하나다. 특히 부채 규모와 급여 수준에 따른 가처분 소득, 물가 및 고용 상황, 금리 동향 등은 개인의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무엇보다 자산시장 참여율이 꽤 높은 MZ세대에게 부동산과 주식, 가상자산 등의 가격 동향은 매우 중요한 변수다. 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좋은 게 없다. 이렇다 보니 자신이 맞닥뜨리게 되는 '거시 변수'에 따라 MZ세대의 소비도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양상을 보인다.

지난해 급격한 금리 인상이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무지출 챌린지'라는 트렌드가 유행한 적이 있다. 한 푼도 쓰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었다. 월급만 빼고 모든 게 다 오른다는 자조 속에서 시작됐던 무지출 챌린지가 최근에는 '거지방'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는 거지방으로 불리는 채팅방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극도의 절약 상황을 서로 검증하고 조언해 주는 식이다. 예를 들어 '4천500원짜리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사 먹어도 될까요'라고 물으면 '회사 탕비실 이용하세요'라는 답이 나온다. 누군가 '우리는 거지입니다'라고 올리면 복명복창하듯이 '우리는 거지입니다'를 따라 한다. 자신의 지출 명세를 공개하면 온갖 평가가 뒤따른다. 어찌 보면 젊은 층의 놀이터와 같은 모습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경기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씁쓸한 현실의 단면이다.

모든 MZ 세대가 경제적 취약층일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경기가 나빠지면 그에 따른 고통을 가장 빨리 느끼게 되는 세대이기도 하다. 특히 고금리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금융 부담에 계속 옥죄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30대 이하 다중채무자는 무려 142만명에 달했다. 1년 전보다 6만5천명이나 늘어난 규모다. 이 중 신용등급이 낮거나 소득 수준이 적은 30대 이하 취약 차주는 전년보다 4만명이 늘어난 46만명에 달했다. 모든 세대의 취약 차주가 1년 새 6만명 늘었는데 이 중 30대 이하만 4만명이다. 전체의 36.5%에 이른다. 빚을 갚지 못하는 연체 차주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청년 세대의 고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고용은 생존이다. 소비를 위한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년층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경기 상황이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심상치 않은 장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상용직 일자리를 구한 청년층(15~29세)은 1년 전보다 4만명이나 줄었다. 이에 반해 임시·일용직에서는 2만명이나 늘었다. 청년층 인구가 줄어든 측면도 분명 있지만, 경기침체 상황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5개월 연속 청년층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도 무관치 않다. 자신을 스스로 거지라고 칭하는 현상을 그저 해학과 풍자로 보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확신을 심어줄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현실에 대한 부정이 확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고민하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다. 그저 한순간 지나칠 트렌드로 봐선 안 된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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