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부가 17년 만에 국제사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국제사법은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대해 국제재판관할과 준거법을 정하는 법이다.

개정안은 그간 축적된 국제재판관할 결정에 관한 판례와 국제사회의 논의 결과 등을 반영해 추상적으로 규정한 재판관할 규정을 구체적으로 세분화했다. 이는 국제분쟁 해결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재판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다.

개정안은 대법원이 그간 판례를 통해 국제재판 관할에 관해 제시했던 '실질적 관련성'을 구체화해 ▲당사자 간의 공평 ▲재판의 적정 ▲재판의 신속 및 경제라는 3가지 기준을 근거로 국제재판관할 유무를 판단하도록 명시했다.

또 합의관할 규정을 신설해 당사자가 소송과 관련한 국제재판 관할에 합의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제재판관할합의는 서면을 원칙으로 하되, 중재법을 참고해 이메일 등 전자적 의사표시에 의해서도 가능하게 된다.

개정안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국제재판관할합의에 관한 제8조다.

국제재판관할합의는 당사자가 달리 정하지 않는 경우 '전속적'인 것으로 추정하며, 외국법원을 선택하는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가 있는 경우 피고 측이 본안에 대해 변론하지 않는 한 한국 법원은 소를 '각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국제사법 개정안 제8조 제3항, 제5항)

이러한 개정안에 따르면 향후 외국과의 계약 체결시 합의관할을 외국법원으로 선택하는 것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국제계약서를 보면 의외로 분쟁발생 시 합의관할로 외국법원을 선택·약정하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대체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외국 당사자의 편의에 맞춰 외국법원을 합의관할로 지정하곤 하는데, 외국 당사자 또한 외국법원으로 관할합의를 해 놓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해 별다른 고민 없이 그렇게 유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외국 당사자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려는 한국인이나, 한국인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려는 외국인은 한국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없어 채권 실현 측면에서 매우 불리해진다. 특히, 한국인을 상대방으로 하는 소를 외국법원에 제기해야 하는 경우 한국인에 대한 소장 송달부터 외국법원 판결의 국내 승인 문제, 채권실현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진다.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소송이 외국 법원에 제기되면 사법공조를 통해 소장이 한국당사자에게 도달하는 데만 최소 6개월이 걸린다. 그 사이에 채무자인 한국 당사자가 한국 내 재산을 제3자 명의로 이전하거나 처분함으로써 채권실현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이번 국제사법 개정안은 국제재판관할합의를 전속적인 것으로 추정하고, 관할 위반 시 한국 법원이 각하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외국법원의 관할합의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면 한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을 가급적 인정하려 했던 기존 태도와는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 충정 이연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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