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조정만으로는 통화정책의 한계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정책 여력을 확보할 만한 다른 정책수단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 총재는 전일 연임 취임사에서 "잠재성장률 하락과 함께 기준금리 운용의 폭이 종전보다 협소해질 수 있다"며 "통화정책 유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정책 운영체계나 수단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성장과 물가 간의 관계 변화, 금융안정에 관한 중앙은행 역할의 중요성 등을 고려해 물가안정목표제의 효율적 운영방안도 거론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기존의 금리 중심 통화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두루 검토하고 있다.

한 한은 관계자는 3일 "통화정책 대응을 기준금리 하나로 하는 것은 어려우니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없지만 검토, 연구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금리중심 통화정책 변경 어려워…정책 공조 필요

한은의 통화정책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존의 통화량 중심에서 기준금리 중심으로 바뀌었다.

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중심의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지만 금융위기 때는 제로금리와 마이너스 금리까지 채택하면서 통화정책의 한계를 겪었다.

이후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라 불리는 양적 완화를 거친 후 이제는 금리 인상 시기로 조금씩 선회하고 있다.

하지만 금리중심의 통화정책 체계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이에 통화정책을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검토되고 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거시건전성정책을 병행하면서 큰 틀의 정책 공조를 하는 방안도 그중 하나다.

정책 간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통화정책의 한계를 개선할 수 있다.

◇금융중개지원대출 제도 개선

금융중개지원대출의 구체적인 운용 방식을 개선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말에 임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2018년 통화정책방향'을 정하면서 금융중개지원대출 제도를 중소기업대출 안정화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한편 중소기업대출비율 제도 운용 관련 사후 방식을 합리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한은은 대출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적격담보증권의 범위 설정방식 등도 점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통화정책의 신용경로를 보완하고, 신용경로를 통한 통화정책 유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이다.

◇물가안정목표제 개선 검토

한은은 올해 하반기부터 물가안정목표제의 중기 목표레벨 2%를 변경할지를 검토한다.

중기 물가안정목표는 3년 주기로 점검한다.

한은은 물가안정목표제 관련 설명책임이나 점검 주기 등을 면밀히 분석해 개선할 방침이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물가목표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중요한 개선과제로 꼽힌다.

최근에는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소비자물가가 물가안정목표인 2%에 못 미쳐 고심하고 있다.

대안으로 물가수준목표제나 명목GDP목표제 등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런 제도의 변경을 선제로 도입한 중앙은행은 없다.

한은 역시 물가안정목표제의 효과를 두고 개선 방안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유동성 조절, 통안계정 제도 변경

통안증권이나 통화안정계정을 통한 유동성 조절을 좀 더 용이하게 개선하는 방안도 있다.

최근 한은은 통화안정계정 입찰 제도를 바꿨다.

통안증권은 주로 91일물~2년으로 만기가 구성돼 있고, 통안계정은 28일물과 환매조건부채권(RP) 7일물은 주로 단기로 구성돼 있다.

한은은 통안계정 경쟁입찰시 초과낙찰 제도를 도입해 응찰규모가 입찰 예정금액보다 클 경우 20% 정도를 더 낙찰할 수 있게 했다. 낙찰 금리 역시 입찰 결과에 따라 유동적으로 정할 수 있다.

이는 금리 인상기에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 통화안정증권 수요가 위축되고, 단기 운용수요가 커질 가능성에 대비한 조치다.

즉, 한은이 유동성을 시장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정책을 바꾼 셈이다.

한은에 따르면 미국, 유럽(EU) 등 선진국은 주로 RP나 국고채 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공개시장조작을 하고 있어 우리나라처럼 중앙은행이 통안증권 발행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경상수지 흑자, 외국인 자금 유입 등 국외 부문을 통한 통화 공급 우위를 보이는 우리나라, 중국, 대만 등 신흥시장국은 통안채 발행을 통해 초과 유동성을 조절한다.

◇금리조정폭 조정은 오히려 '불확실성'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 기준금리 조정폭을 줄이는 방안은 정책수단으로 검토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화량 조절에서 기준금리 조정으로 바뀐 후 지금까지 한은은 25bp 금리조정폭을 유지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 총재는 금리조정폭을 그때그때 바꾸는 것은 오히려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전일 연임 기념 기자단 다과회에서 "큰 줄기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며 "25bp가 관행인데 10bp냐 15bp냐를 놓고 시장을 고민하게 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또 주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25bp 정도는 돼야 영향을 주고, 효과를 점검할 수 있는 범위의 조정"이라며 "시장에 주는 불확실성은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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