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정부와 국회가 규제개혁 관련 법안 처리에 집중하면서 올해 안에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의 입법 논의는 불투명해졌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매각 등 5대 금융그룹에 대한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압박 명분도 약해질 전망이다.

2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당초 올 하반기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가칭)'을 국회에 발의할 예정이었으나 인터넷전문은행특별법 등 금융개혁 법안에 밀려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로써는 금융그룹 통합감독 관련 법안 발의가 여유치 않고 연말께 논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면서 "연내 발의는 힘들 것으로 보이며 자본규제안 등 세부기준안 마련도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그룹통합감독 제도는 금융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대기업 집단이나 은행이 아닌 보험·증권사를 둔 금융그룹이 동반 부실해지는 위험을 막고 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도입된다.

계열사 간 순환 출자나 내부거래 비중이 지나치게 높으면 한 계열사의 부실이 그룹 전체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자본금을 충분히 쌓거나 내부거래를 줄이도록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감독 대상은 금융자산 5조 원 이상 복합금융그룹으로 삼성·한화·현대차·DB·롯데·교보생명·미래에셋 등 7개 그룹이다.

금융당국은 올 7월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 모범규준을 시행하면서 9월 정기국회 이전 법안 발의를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모범규준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사항이지만 법으로 제정되면 위반 시 징계나 과태료, 벌칙 등 행정제재를 할 수 있다.

모범규준은 금융그룹의 자본(적격자본)이 위기가 닥쳤을 때 필요한 자본(필요자본)보다 많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금융위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자본 적정성 지표는 최소 기준인 100%를 훌쩍 뛰어넘지만, 삼성전자 보유 지분을 반영해 다시 계산하면 110% 수준으로 떨어진다.

금융당국은 삼성전자에 위기가 닥칠 경우 삼성생명까지 동반 부실해질 수 있다며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매각을 거듭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 처리가 늦어질 경우 삼성생명은 14조 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는 데 시간을 벌 수 있다.

당국은 법 개정 전이라도 자율적으로 준비해 모범규준을 정착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지키지 않아도 처리할 방법이 없다.

삼성생명 역시 집중위험, 중복자본 등 조정 항목의 세부 내용을 포함한 자본규제 최종안을 보고 지분매각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앞장서 처리할 이유가 없다.

모범규준에 담진 않았지만 입법 과정에서 추가하겠다고 밝힌 금융그룹 유사명칭 사용금지와 각종 강제이행수단 역시 시행 시기가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융당국은 총자산이 5조 원을 넘는 복합금융그룹이거나 금융지주사 또는 국책은행을 제외하고는 '금융그룹'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예정이다. 이 경우 대신증권과 대신자산운용 등을 보유한 대신금융그룹, 웰컴저축은행 등을 보유한 웰컴금융그룹 등이 명칭 변경에 나서야 한다.

또 금융그룹 건전성 기준 미달 시 적기시정조치·위험관리조치 불이행 시 행정처분 등 조치하고, 건전성 기준 미달 시 신규업종진출·M&A·대주주 변경 등을 제한하는 내용을 법안에 담을 예정이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여전히 필요자본에 가산되는 집중위험 산출 방법에 논란이 많아 최종안을 확정하기까지도 험난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당장 커다란 압박이 없어 일단 법 제정 등 상황을 지켜보고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