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대도 기자 = 달러-원 환율이 최근 레인지 흐름의 상단을 뚫고 1,140원대로 올라섰다.

미국 국채 금리 급등으로 투자 심리가 훼손된 데다, 기술주 중심으로 사상 최고치에 올랐던 미국 주식시장이 고평가됐다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환율 문제로 옮겨붙을 수 있다는 우려에 원화 약세가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오후 1시 4분 현재 전 거래일 대비 9.40원 오른 1,143.30원에 거래됐다.

달러-원은 한때 1,143.90원을 찍기도 했다. 연고점이자 지난해 9월 29일 기록한 1,147.00원 이후 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른 통화와 비교하면 달러-원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이 시각 현재 달러-원은 전일 서울 외환시장 마감 무렵 대비 0.82% 올랐는데, 이는 역외 위안화(0.27%)와 싱가포르 달러(0.14%), 호주 달러(0.65%) 등에 비해 약세 폭이 큰 편이다.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약세 속도가 빠르며, 이는 엔화 강세 폭이나 멕시코 페소 약세 수준과 비슷한 정도다.

달러-원은 전일 서울 외환시장이 끝나고 유럽시장에서부터 뛰기 시작했다.

미·중 무역갈등이 해결될 조짐이 없는 상황에서 양국이 환율전쟁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며,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다.

환율조작국 문제는 위안화 또는 원화 강세로 연결되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미·중 갈등 자체가 심화하는 양상으로 비치는 모양새다.

앞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은 "우리는 환율 시장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고 이 이슈를 무역 논의의 일부로서 중국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므누신 장관은 "올해 들어 위안화는 상당히 절하됐고 우리는 확실히 무역 논의의 일부로서 환율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합의하길 원하지만 나는 그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본다"며 "우리는 몇몇 회동을 취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 여부에 확인이 필요하지만, 중국 정부가 애플과 아마존이 데이터센터 서버에 이른바 스파이 칩을 심었다는 일부 외신의 보도까지 나왔다.

이처럼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 같았던 미·중 무역분쟁이 재부상하면서, 원화 약세 속도가 빨라졌다.

다만 무역분쟁 당사국인 중국의 위안화는 7위안을 앞에 두고 약세 흐름이 빠르지는 않은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의 개입에 대한 경계심이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 기대와 수급적 요인 등에 상대적으로 무거웠던 달러-원이 위안화 환율과 눈높이를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국제금융시장의 한 전문가는 "달러-위안 환율은 7위안에 가까워 부담스럽지만, 달러-원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히 글로벌 투자 심리에 예민한 특징이 있는 원화는 전일 미국 주식시장 급락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금리 인상 스탠스가 강경해지면서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했고, 이에 따라 전반적인 투자 심리가 불안정해졌다.

여기에 미국 정보통신(IT) 업종의 고평가 논란 및 실적 부진 우려가 더해졌다.

지난 9일(현지 시가)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금융 안정보고서에서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안일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IMF는 무역 불확실성이 투자자 심리를 급선회시켜 금융시장의 매도세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루 앞서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IMF는 미·중 무역갈등에 올해와 내년 글로벌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0.2%포인트(p) 낮춘 3.7%로 수정하기도 했다.

또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에서 4개 분기 혹은 그 이상의 기간 1천억 달러의 자금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건스탠리는 미국 증시의 투자 사이클이 전환점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했다.

외환시장의 한 전문가는 "일단 미국 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는 공포심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며 "1,130원대에서 번번이 막혔던 원화가 상단을 웃돌면서 에너지가 분출된 것 같다"고 말했다.

dd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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