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연말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심리적으로 강한 벽이었던 환율 1,100원 선이 무너졌다. 그동안 환율 변동성 축소로 딜링룸에서 눈을 감고 졸던 외환 딜러들의 눈빛이 돌연 달라졌다.

올해 마지막 큰 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속에 외환 당국과의 심리게임에서 얼마나 수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인지에 셈법이 복잡해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향후 환율이 어디까지 떨어질지에 대해 감을 잡고 대응하는 것은 딜러들의 올해 버짓(budget)과 성과급에도 직결된다.

딜러들이 당국의 '속내 읽기' 신공에 몰입하는 동안, 당국은 그동안 쌓은 '포커페이스' 내공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일단 전문가들은 환율이 작년 9월 유럽 재정위기의 재현 시에 급등의 출발점이었던 1,090원대를 주목한다. 이번에 당시의 급등 출발점인 1,090원 선을 하향 돌파한다면 같은 해 저점인 1,050원 선까지 추가 하락이 가능하다는 기대치를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이런 분석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당국과 딜러들 간의 근래 보기 드문 '대회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장의 수급 측면만을 보면 이런 환율의 하락 예측은 맞지 않다. 대부분 조선업체 등 수출 네고의 출회에 의존하고 있을 뿐, 정작 외국인들의 주식ㆍ채권 거래는 오히려 최근 유출세로 반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율이 연저점을 경신하기 시작한 10월 들어 외국인들은 주식의 경우 지난 29일까지 1조2천5백억원을 순매도하고, 채권도 26일까지 순투자가 1,000억 원대로 축소됐다.

따라서 최근의 환율 하락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국가신용등급 상승, 녹색기후기금(GCF)사무국 유치 등 우리 경제의 외부평가가 높아진 데 따른 기대감에 기댄 심리적인 측면이 크다.

국내·외의 환율 전망 하향 예측에 힘입어 수출 자금이 다소 심리적이고 투기적으로 집중 나타나는 만큼, 향후 다시 강한 급반등의 가능성은 여전하다. 특히 최근에는 외환거래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환율 변동성이 과도하게 떨어진 상황에서는 향후 당국이 '살짝' 개입에만 나서든가, 조그만 대내외 충격이라도 발생하면 급변할 위험성이 숨어 있다는 얘기다.

스페인 구제금융의 향방과 그리스 자금지원 등 불확실성은 여전히 꺼진 불이 아니다. 여기다 국내외 경기 저점 기대 통과에 대한 불투명성, 미국의 재정절벽 위험, 중국 경기부양책의 향방 등 '지뢰밭'은 곳곳에 널려 있다.

유럽과 미국, 일본이 자국 화폐를 대거 찍어내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 해서 한국의 원화가 '세이프 헤븐(Safe Haven)'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어 보인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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