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A형 간염은 개인위생 관리가 좋지 못한 저개발 국가에서 많이 발병된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20~40대에서 발병률이 급증하는 양상을 보인다. A형 간염이 어린 시절에 발병하면 대부분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는 가벼운 증상만 보인다고 한다. 지금보다는 덜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중년층에서 A형 간염이 거의 관측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한 청정한 생활환경의 역설인 셈이다.

◇ 저금리 덕분에 호시절 누린 금융시장과 A형 간염은 닮은꼴

장기간 초저금리에 노출된 글로벌 금융시장도 너무 청정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A형 간염에 노출되기 쉬운 경우와 닮은꼴이 될 수 있다. 엄청난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모든 자산이 사실은 초저금리라는 환경의 혜택을 듬뿍 받고 있어서다. 자산의 할인율 노릇을 해야 하는 금리는 제로 혹은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려갔다. 분모에 들어가는 할인율 개념의 금리가 제로 혹은 마이너스 수준이니 분자는 가만히 있어도 절대 가치가 커지는 구조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쇼크가 '블랙스완(Black Swan)'이 될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글로벌 중앙은행의 강력한 화력 지원으로 지탱해온 금융시장이 '심판의 날'을 맞을 수도 있어서다.

JP모건에 따르면 전세계 48개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했고 9조달러 규모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글로벌 자산시장이 사실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바탕으로 유사 이래 최고의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중앙은행이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정상화할 것이라는 시늉만 해도 글로벌 금융시장이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우호적인 환경을 누려왔기 때문이다. 너무 청정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바이러스의 공격에 오히려 더 취약한 A형 간염과 닮은 꼴이 될 수 있다.

블랙스완은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지만 한번 일어나면 치명적인 충격을 초래하는 사태 등을 일컫는다. 월가 투자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그의 저서 'The black swan'을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언하면서 두루 쓰이게 됐다.

◇미국 인플레이션, 블랙스완이 될 조짐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벌써 블랙스완으로 변할 수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4월 CPI는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웃돌아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월 대비 기준으로 0.8% 올라 월가의 전망치 0.3%를 훌쩍 뛰어넘었다. 4월 CPI는 전년 대비로는 4.2%나 올라 시장의 예상치 3.6%를 웃돌았다. 에너지와 식료품 등 변동성이 큰 요인을 제외한 근원 CPI도 전월 대비 0.9%나 올라 시장의 전망치였던 0.3%를 세배나 웃돌았다. 전년 대비 근원 CPI도 3% 상승해 시장의 전망치 2.3%를 상회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일부 연준 관계자들은 1년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의 기저효과가 상당 부분 반영된 노이즈 현상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리처드 클라리다 연준 부의장은 CPI 발표 직후 연설을 통해 "일회성 물가 상승이며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일시적일 것"이라며 연준의 초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재확인했다. 그는 4월 고용과 인플레이션 지표에 놀랐다면서도 소음이 많은 하나의 지표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완만해지기 전 향후 몇 개월 동안 더 상승할 것이라고 보면서도 높은 인플레이션보다 취약한 고용시장에 대해 더 큰 우려를 표명했다.

◇ 미 가계의 추가 유동성은 2.1조달러…중국의 저렴한 노동력 시대도 저물어

연준이 가계의 추가 유동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체탄 아이아는 미국 가계의 경우 4천900억달러의 손실을 입고 지난 3월 기준으로 1조3천억달러를 이전수지로 지원을 받은 것으로 추산했다. 그는 1조9천억 달러 규모의 재정 부양책까지 감안하면 가계의 추가 유동성은 2조1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4월 CPI가 급등하면서 그의 진단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는 중국의 인플레이션 압력도 주목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중국의 인구구성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등 노동력 부족이 시달릴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으로 진단됐다. 그동안 글로벌 골디락스 성장을 주도했던 중국의 싼 노동력이 더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최근 3년 내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하는 등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이날 4월 PPI가 전년 대비 6.8% 올랐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조사한 전문가 예상치인 6.5% 상승을 상회했다. 다우존스에 따르면 중국의 4월 PPI는 지난 2017년 6.9%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연준 등 글로벌 중앙은행이 자산매입 축소를 의미하는 테이퍼링 등을 이연할수록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제롬파월 연준의장은 2013년 3월 테이퍼 텐트럼이 일어날 당시 신참 연준이사였다. 그는 당시 테이퍼 텐트럼을 촉발시킨 벤 버냉키 전 의장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준의사록 등에 따르면 파월은 당시 "지금 우리는 지붕 위에 있으면 안전하게 (risk-free) 내려갈 길이 없다"면서"뛰어 내려야 할 듯하다"며 연준 지도부를 지적했다. 당장의 인플레이션 수준만 보면 파월의 연준도 지붕에서 뛰어내리듯 정책 기조를 급작스럽게 바꿔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블랙스완이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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