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항룡유회(亢龍有悔).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 내려갈 길밖에 없음을 후회한다는 뜻으로, 부귀영달이 극도에 달한 사람은 쇠퇴할 염려가 있으므로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점을 이르는 말이다. 욕심에 한계가 없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전기차 선도기업인 테슬라(TSLA)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새겨들었으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머스크는 그동안 트위터 등 이른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가상 화폐 가격을 끌어올리는 선봉에 섰다. 개인 투자자들은 그의 트위터 내용 등에 환호하며 묻지마 투자 형태를 보였다. 가상화폐의 블루칩인 비트코인부터 장난처럼 만들어진 도지코인에 이르기까지 폭등세를 견인하는 데 머스크의 힘이 8할은 될 듯하다.

머스크는 지난 1월 테슬라가 여유 현금을 바탕으로 15억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매수했으며 차량 결제 대금으로 비트코인을 받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발표했다. 비트코인의 대세 상승이 시작된 시점과 궤를 같이한다.

이에 앞서 머스크가 한때 관여했던 지급결제 시스템인 페이팔은 사용자들이 계좌에서 비트코인을 사고팔게 하겠다고 포용정책을 공개해 가상화폐 대세 상승의 물꼬를 텄다.

이처럼 가장 큰 뒷배처럼 행동했던 머스크는 이달 들어 비트코인에 직격탄을 날렸다. 비트코인 채굴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결제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머스크의 발언은 일종의 배신행위에 가까울 수 있다. 머스크가 비트코인 채굴과정을 여태까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전기차 생산업체이고 탄소배출 관련 규제 크레디트로 차량 판매 부진에 따른 손해를 벌충해왔다. 그런 머스크가 비트코인의 채굴 과정을 몰랐을 리가 없다는 게 관련 투자자들의 푸념이다.

머스크가 가상화폐 투자자에 끼친 폐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NBC방송의 간판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 출연을 앞두고 자신을 '도지 파더'(도지코인 아버지)라고 지칭하며 투자자들에게 기대감을 잔뜩 심어놓았다. 이후 그는 정작 SNL에 출연해선 도지코인이 사기라는 농담을 해 도지코인 가격이 최고가 대비 38% 추락하는 데 한몫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머스크의 발언 등으로 애꿎은 개인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져 망연자실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9일 하루에만 30% 이상 폭락하는 등 최고점 대비 반토막 이하로 꺾였다.

하지만 머스크가 가상 화폐 등에 끼친 가장 큰 폐해는 따로 있다. 머스크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가상화폐의 변동성을 극대화하면서 기관투자자들이 발을 빼게 했기 때문이다.

JP모건에 따르면 기관 투자자들은 한 달 전부터 비트코인 선물과 펀드에서 돈을 인출해 금에 더 많은 돈을 넣었다. JP모건 전략가인 니콜라우스 파니지르트조글루는 "비트코인 자금 흐름 모양새는 계속 악화하고 있으며 기관투자자들이 지속해서 포지션을 줄이고 있다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트코인 펀드에 대한 4주간의 기관 자금 유입은 4월 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비트코인이 6만4천 달러 안팎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던 직후다. 머스크가 트위터 등을 통해 비트코인의 변동성을 증폭시킨 시점과도 오버랩된다.

기관 투자자들은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가장 싫어한다. 특정인의 트위터 등으로 하루에도 급등락을 거듭하는 상황을 절대 반기지 않는다.

당분간은 기관 투자자들이 가상화폐 시장에 진입하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설립하는 등 새로운 시대의 선봉에 선 것 같았던 머스크가 이제는 시장의 노이즈로 전락한 셈이다.

공자(孔子)는 "항룡은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높아 교만하기 때문에 자칫 민심을 잃게 될 수도 있으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머스크가 꼭 한 번은 새겨들었으면 하는 말이다. 이래서 공자를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하나 보다.(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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