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재산과 소유물을 강압적으로 빼앗은 것을 몰수(沒收)라고 한다. 사회주의 혁명의 열풍이 한창이던 19세기에 유산자(有産者) 계급의 재산을 강압적으로 빼앗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하나인 독일에서 검토되고 있다. 오롯이 치솟는 주거비를 잡기 위해서다.

외신 등에 따르면 독일의 수도 베를린시는 월세 급등에 제동을 걸기 위해 대형 부동산회사의 보유주택 20만여채를 몰수해 공유화하는 방안을 놓고 주민투표를 한다. 베를린시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공유화에 대한 지지가 반대보다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주택 3천채 이상을 보유한 민간 부동산회사의 보유주택을 몰수해 공유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몰수 대상만 베를린의 임대주택 150만채 중 10여 개 부동산회사가 보유 중인 20만채에 이른다. 독일 헌법 15조가 이번 몰수 추진의 논거가 되고 있다. 해당 조항은 "토지와 천연자원, 생산수단은 사회화(공유화)를 위한 손해배상의 방식과 규모를 정하는 법률을 통해 공유재산이나 공유경제의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소식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주거비 상승이 얼마나 엄중한 상황인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내 20개 주요 도시의 집값을 측정하는 지표인 케이스·실러 지수는 6월 들어 1.77% 올랐는데 전년 동월 대비로는 19.1% 상승했다. 전년동월대비 상승률은 1987년 이후 최대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기록은 2005년 9월 14.4%였다.

집값 상승세가 거세지면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면서 부자들의 자산 증식만 우회적으로 돕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대형 투자은행들까지 미국의 백만장자 등 부유층에 대한 대출을 강화하면서 이들의 합법적인 탈세까지 돕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지난해 2분기 기준으로 JP모건,뱅크오버아메리카(BofA),시티,모건스탠리 등이 부유층에 대출한 금액만 6천억 달러에 이른다. 전년 대비 17.5%나 늘어난 규모다. 이들 은행의 장부상 대출 비중도 16.3% 수준에서 22.5%로 급증했다.

이들 대형 금융기관이 백만장자에 대한 적용 대출금리는 2년만기 기준으로 평균 연 1.4%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4년간 부유층에 대한 대출이 50%나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당 은행들의 전체 대출 잔고는 9% 늘어나는 데 그쳤다.

부자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회사와 투자기관을 위해 우회해서 대출을 받기도 한다. 자금조달 절차가 간편하고 조달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다.

하지만 부자들이 초저금리의 대출을 활용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바로 합법적인 절세 효과다. 자산가들이 대출을 활용하면 다른 자산을 취득하기 위해 기존의 자산을 처분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의 경우 100만달러 이상의 자본이득에 대해서는 20%의 자본이득세가 부과된다. 조 바이든 정부는 자본 이득세를 39.6%로 두 배로 인상할 계획이다. 자산가들이 초저금리의 손쉬운 대출을 마다할 리가 없다.

자산가들이 당장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을 처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자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으로 풀이됐다. 자산 공급이 그만큼 줄어들고 수요만 증가하기 때문이다.

연준이 저소득층의 부진한 고용 등을 이유로 초완화적인 정책을 고수한 탓에 부자들이 자산을 쉽게 증식할 수 있는 우회 통로만 열어준 셈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퍼스(UC버클리)의 가브리엘 주크만 교수에 따르면 백만장자들은 올해에만 2조7천억달러의 비과세 자산을 포함해서 4조2천억달러에 이르는 자산을 끌어모았다.

미국 시민단체들은 백만장자에 대한 대출은 합법적인 탈세라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정책 당국자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집값 등 자산가격 상승이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집값 상승에따른 렌트비 상승이 저소득층 가처분 소득의 직격탄이 되고 있다. 주거 복지가 취약한 렌트비 상승의 주범가운데하나가 연준의 초저금리로 지목됐다. 렌트비 상승이 임차인들의 렌트비 상환 능력의 문제로 이어지면서 향후 미국 경제에 더 큰 그늘을 지울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늘 저소득 계층을 걱정하며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되레 이들의 주거비 부담만 늘리는 형태로 귀결되고 있다. 이래서 무차별적인 통화정책은 참 어렵다.(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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