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관위 '수용' 법안은 단 하나뿐



(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21대 국회에서 현재 계류 중인 국민연금법 개정법률안 50여 건 가운데 기금운용과 관련된 법안은 10여 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일부 법안은 내용이 대동소이해 향후 통합 심사를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에서 잠들어 있는 이들 계류안이 온전히 빛을 보게 될지는 미지수다. 발의된 법안은 소관위원회에서 심사하게 되는데 국민연금의 소관위인 보건복지부는 대부분의 기금운용 관련 법안에 대해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신중 검토는 부정적인 입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통상 원안대로 가결되긴 어렵다는 뜻으로 읽힌다.

특히 일부 발의안은 기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거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또 이미 다른 법에서 규정하고 있거나 국민연금 자체 규정으로 명문화한 내용과 중복되는 법안도 다수여서 수정 또는 폐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소관위 '수용' 법안은 단 하나뿐…이낙연 법안은 미검토

2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선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방식과 투자 대상, 기금위를 비롯한 주요 위원회의 설립 근거 및 운영 방안, 이해상충 방지 등에 관한 법안이 발의된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책임투자 의무화 ▲공공투자 대상을 출산율 제고 분야로 제한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인원 조정 ▲기금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법제화 ▲기금운용 관련자의 증권거래 제한 근거 마련 ▲기금운용지침 내용 추가 ▲기금 보유 국내주식의 대여 금지 ▲국민연금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 등으로 법안 내용이 분류될 수 있다.

이 가운데 ESG책임투자 의무화 법안은 기금운용 관련 법안 중 유일하게 소관위가 미검토한 상태다. 지난 8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해당 법안은 연기금이 책임투자에 나설 때 ESG 요소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못 박았다. 현행법은 연기금 투자 때 ESG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여기에 강제성을 더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연기금 업권에선 투자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한편 이같은 강제성을 부가한들 실효성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와 달리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 법안은 기금운용 관련 법안 중 유일하게 소관위 검토 단계에서 '수용' 의견을 받았다. 해당 안건은 공무원연금과 사립학교교직원연금, 군인연금은 근거 법률에서 모두 국가의 지급보장을 규정하고 있는데 국민연금만 이같은 조항이 없어 이를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다.

소관위인 보건복지위원회는 다만 "국가의 지급보장 책임을 명시하더라도 실효력을 발휘하려면 정부의 재정 여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 개편이 선행돼야 하고 재정 소요 추계와 국가 부담의 적정 수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자 제약 과해" 지적 잇달아

두 법안을 제외한 나머지 계류안은 모두 소관위 검토 단계에서 '신중 검토' 의견을 받았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방식에 관한 법안들은 투자 제약이 과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박광온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국민연금 기금의 공공투자 부문을 출산율 제고 분야로 제한한다는 것이 골자다. 또 국채 매입을 통한 공공부문 투자 수익률을 5년 만기 국채수익률 이상으로 규정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국민연금법은 공공부문에 기금을 투자할 때 국채매입을 통해서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관위는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하면서 "기금 운용의 목적과 분야를 한정할 필요는 없다"며 "출산율을 높이려면 기금을 활용하기보단 출산·양육 지원 등 더 직접적인 정책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공공부문 투자 수익률을 5년 만기 국채 수익률 이상으로 한정한다는 의견에도 복지부는 부정적이다.

복지부는 "이같이 개정돼도 국채 발행의 주체인 재정 당국이 국민연금 기금의 공공투자를 목적으로 채권을 발행하지 않는다면 이 법안의 효력엔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발행목적이 특정된 특수목적 채권을 발행하는 것도 전제될 필요가 있고 수익률을 5년 만기 국채 수익률 이상의 수준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어 수익률 미달성 시 정부의 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주식의 대여금지를 법제화하는 것도 소관위는 회의적이었다.

이태규 의원은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대여해 공매도 투자에 기여하고 있다며 개인 투자자의 손해를 막기 위해 이를 금지해야 한다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소관위는 "현행 '자본시장법'에서 허용하는 합법적인 공매도와 대차거래까지 제한하면 국민연금 수익 창출, 시장 유동성 확보 등의 공매도 순기능을 원천 차단할 여지가 있다"며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의견을 종합해보면 대여 거래 관련 기금 운용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국민연금은 공매도 관련 여론 악화를 의식해 2018년 말부터 국내주식을 전혀 대여하지 않고 있으며 지난해에도 내부 규정에 명문화하는 작업까지 마친 바 있다.

◇기본권 침해·과잉금지원칙 위배 우려도

이와 함께 국민연금 기금위 운영에 관한 개정안도 다수 발의된 상태지만 원안 가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춘숙 의원은 기금의 의결위 법제화 등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의결권 행사의 신의성실 의무 규정 신설 ▲의결위 법제화 ▲의결권행사전문위 회의록 공개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신의성실 의무의 경우 이미 국가재정법이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신의성실 원칙을 규정하고 있어 중복 규제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 의결위의 회의록을 공개할 경우 책임소재 문제 등으로 위원들이 적극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울뿐더러 주요 기금운용전략, 투자정보 노출 등으로 기금과 가입자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소관위는 "의결위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그렇게 할 경우 국민연금의 또 다른 주요 위원회도 함께 법제화해야 한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와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 등 3개 위원회를 국민연금법 시행령으로 두고 있다. 의결위는 국민연금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이름이 변경됐다.

기금위의 위원 구성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혜숙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국민연금 기금위의 위원 구성을 현재 국민연금가입자격별 구성비를 고려해 사업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 대표 비율을 1:1에서 2:1로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 기금위 내 전문가 위원 수를 2명에서 4명으로 증원해 기금운용 책임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에 대해선 기금위의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복지부는 "기금위 내 전문가 위원은 정부 추천을 받도록 하고 있어 정부 친화적 인사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 기금위원 총 20명 중 6명이 공무원 및 공단 이사장인데 전문가 위원을 2명이나 더 늘리면 정부 친화적 위원회 성격이 짙어질 우려가 있는 만큼 기금위의 독립성과 효율성을 고려할 때 외부 기관이 전문가 위원을 추천하도록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금 운용 관련자의 증권 거래를 제한하는 개정안은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규 의원이 발의한 안건은 기금 운용과 관련된 국민연금공단 임직원 및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증권 거래를 제한하고 보유증권 명세의 신고 의무가 필요하며 위반 시 벌칙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관위는 "해당 법안은 기금 운용 관련 위원회는 업무 특성상 계속성 및 상시성이 없고 개별적으로 투자 의사를 결정하지 않는다"며 "기금 운용 관련 민간위원의 재산권 행사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목표로 하는 공익에 비해 기본권 침해 수준이 커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소관위는 "개별적인 투자정보를 활용할 가능성이 없는 지수형(ETF 등) 투자를 포함해 모든 증권 거래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처벌하는 것 또한 과도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에 기금이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 행사에 관한 기준 및 절차를 명시해야 한다는 개정안도 있지만 이미 국가재정법이 자산운용지침에 관련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추가 법제화는 실익이 작다는 의견도 있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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