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벼랑 끝 대치. 한국의 정치적 지형을 설명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표현이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한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양분된 미국 의회가 미국 경제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을 볼모로 부채한도 상향 조정 등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어서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부채한도가 상향되지 않으면 오는 10월 18일에 연방정부의 자금이 고갈될 것으로 경고했다. 옐런 장관은 상원에 출석해서도 부채한도가 상향되거나 유예되지 않으면 미국은 초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직면하고, 미국 경제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존 케네디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 정부채를 걸고 도박을 하고 싶을 만큼 당신들의 정치가 중요하냐고 공격했다. 케네디 등 공화당 진영은 민주당이 법안 단독처리라는 쉬운 해결책을 쓰지 않고, 디폴트 우려를 볼모로 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상원에서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는 60표가 필요하다. 상원은 민주당은 공화당이 50석씩 나눠 가졌다. 사실상 단독처리가 불가능한 구조다. 하지만 예산조정 절차를 활용하면 법안 단독처리도 가능하다. 민주당이 끝까지 명분을 축적하고 있는 셈이다.

미 의회의 양당이 극한 대치로 치달으면서 나스닥 종합지수가 지난 28일 2.8% 이상 급락하는 등 불똥은 금융시장으로 튀었다. 투자자들이 이제부터 미국의 정치적 지형도 챙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주한인유권자연대(대표 김동석)에 따르면 미 의회의 양당 의석 분포뿐만 아니라 미 하원 의원들의 이데올로기별 성향도 파악해야 지금의 예산안 및 부채한도 협상에 대한 밑그림이 보인다.

민주당 상원의원 중에서는 엘리자베스 워런과 버니 샌더스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두 의원은 진보 성향의 의원들을 이끄는 지도자로 대우받으면서 각종 현안에 대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등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워런 의원은 최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연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 여당인 민주당에서 '여당 내 야당'으로 통하는 조 맨친 상원 의원과 커스틴 시네마 상원 의원의 발언도 챙길 필요가 있다. 부채한도 협상의 핵심 키를 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여야 동수인 상원에서 해당 의원들의 반대는 사실상 부채한도 협상 실패를 의미한다.

다음으로 민주당 낸시 팰로시 위원이 의장을 맡은 미 하원의 의석 분포도 좀 더 세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 하원은 모두 435석으로 이 가운데 민주당이 221석을 차지했고 공화당은 211명이다. 3석은 공석으로 남아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다시 연방의회코커스, 신민주연합, 블루독연합 등으로 계파별 모임을 가지고 있다.

공화당도 화요일 그룹, 공화당 메인스트리트파트너십, 공화당 연구위원회, 하원 프리덤 코커스로 계파가 나뉜다.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이 모두 참여하는 '문제해결 코커스'라는 초당적 모임도 있다.

민주당에서는 프리밀라 자야팔(워싱턴 7지역구) 의원이 이끄는 연방의회 진보 코커스가 소속 의원 94명으로 최대 계파다. 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아 이른바 오바마계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수잔 델베네(워싱턴 1지역구)가 의장으로 있는 신민주 연합이 소속 의원 93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계파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이른바 스쿼드 출신 의원들과 관련된 뉴스가 나오면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샌더스 키즈'로도 불리는 등 민주당 내부에서 스쿼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스쿼드는 소말리아 난민 출신이자 첫 무슬림 여성 하원의원 일한 오마(미네소타주),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이자 히스패닉계 미국인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뉴욕주), 매사추세츠주 첫 흑인 여성 하원의원 아이아나 프레슬리(매사추세츠주), 팔레스타인 난민 2세 출신 라시다 틀레입(미시건주)을 일컫는 별칭이다. 이들은 모두 진보 성향의 유색인종 여성의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18년 중간선거에 동시에 당선돼 결성됐고 지난 2020년 선거에서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이에 맞서 공화당 출신의 신예였던 제시카 테일러(앨라배마), 미셸 피슈바흐(미네소타), 낸시 메이스(사우스캐롤라이나), 베스 반 다인(텍사스) 등이 이른바 "사회주의에 맞서는 '보수 스쿼드'를 결성했지만 영향력은 떨어진다. 리더 역할을 했던 제시카 테일러가 지난해에 재선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해당 인물에 대한 성향 등을 파악하면 부채 한도 협상 등 미국 정치 관련 재료를 풀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그래도 금융시장에서 투자자 노릇을 하기는 참 어렵다. 이제는 복잡하고 낯선 미국의 정치 지형까지 챙겨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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