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을 비롯해 글로벌 경제·금융 전문가들이 미국 고용시장을 둘러싸고 고민에 빠졌다. 강한 구인 수요에도 좀처럼 고용이 늘지 않고 있어서다. 과도한 실업급여 등이 고용 정체의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좀 더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동부시간 20일 기준 미국 코로나 19 확진자 및 사망자 현황:출처 코로나 보드 >



◇ 2차 세계대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어떤 의미인지부터 규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고용부진이 팬데믹으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가장 큰 파장은 너무 많은 사람이 숨졌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만 사망자가 약 75만명에 달한다.국제연합(UN) 통계자료에 따르면 미국 인구는 3억3천291만명이다. 대략 마국인 440명 당 1명 꼴로 코로나19에 희생된 셈이다. 440명 이면 다들 이름 정도를 알고 지낼 수 있을 정도의 규모다. 미국인은 내 가족일 수 있고 내 이웃일 수 있었던 사람을 단기간에 너무 많이 잃은 것이다.

희생자 수만 따지면 2차 세계 대전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에서 사망한 미군은 29만1천500여명에 이르고 비전투 요인으로 사망한 미군도 11만3천여명에 달해 모두 40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유럽 식민지 시대를 마감하고 독립한 1776년 부터 미국이 관련된 모든 전쟁의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을 모두 합쳐도65만1천명에 그친다.

◇ 연준도 뒤늦게 주목한 죽음에 대한 공포

미국에 일자리가 넘쳐나고 허드렛일의 시급이 15달러까지 치솟아도 고용이 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죽음에 대한공포'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삼 높아지고 있다. 연준도 뒤늦게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당초 전망보다 고용에 더 깊은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바킨 리치먼드연방준비은행(연은)총재는 지난 19일 노동력 공급 부족이 경제 성장을 제약할 수 있으며, 팬데믹을 넘어서도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바킨 총재는 연례 인력개발 심포지엄 연설에서 "우리는 올해 노동공급 부족이 경제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일자리 미스매치, 가족 돌봄, 건강,동기유발 등이 고용에 대한 팬데믹의 네 가지 주요 장벽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고용시장의 마찰은 팬데믹이 끝나고, 학교와 보육시설이 안정적으로 재개되고, 팬데믹에 따른 혜택이 종료되고, 초과저축이 줄어들면 점차 완화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노동 부족이 팬데믹이 끝난 후에도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 노동력 조기 퇴장과 자산효과 주목해야

여성 노동력이 조기에 고용시장에서 퇴장한 것도 고용부진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다.

연준 집행부를 대표하는 미셸 보우만 이사도 여성 노동력 부족 탓에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고용이 회복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팬데믹으로 여성 노동력이 필요한 업종에서 고용이 단기간에 너무 많이 줄었다는 이유에서다. 보우만 연준 이사는 "코로나19는 이전의 위기와 달리 여성 근로자가 많은 직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여성이 숙박, 음식 서비스, 노인 돌봄 등 노동조건이 덜 유연한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던 탓으로 풀이됐다. 팬데믹으로 어린이집이나 학교 등이 폐쇄된 것도 여성들의 고용 시장 복귀에 걸림돌이 됐다. 여성들을 중심으로 55세 이상의 노동력이 노동시장에서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기 은퇴가 늘어난 데는 자산효과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됐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 이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대략 47%가 올랐고 집값도 평균 25% 가량 상승했다. 미국 가계의 상당수는 막대한 규모의 경기 부양 덕분에 팬데믹에도 이전보다 부유해진 것으로 느끼고 있다. 미국 전체 GDP의 25%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이 투입되면서 가계의 저축률은 GDP 대비 10% 수준까지 치솟았다. 맞벌이 가계가 홑벌이로 돌아서고 베이비 부머들이 조기에 은퇴할 정도의 재정적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실업급여 추가 지급은 중단됐지만, 지난 8월부터 자녀 1명당 연간 최대 3천600달러에 이르는 자녀세액공제(CTC)가 적용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소득공제가 아니라 세액 공제라는 점에서 각 가계에 상당한 지원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서다.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가구 96%가 올해 평균 5천86달러씩 자녀 세액공제를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일부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집에 머물 수 있는 여유가 그만큼 생겼다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고용시장에 대한 노동자들의 태도를 비롯한 많은 부분이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는 점을 직시해야향후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세계의 지성인 토마스 프리드먼('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도 지난해 3월 팬데믹이 절정일 때 뉴욕타임스에 기고한'Our New Historical Divide: B.C. and A.C. - the World Before Corona and the World After'라는 칼럼을 통해 이미 이런 상황을 예고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여태까지 인류의 역사가 예수탄생 이전(BC:Before Christ)과 이후(AD:Anno Domini,라틴어로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로 나뉜 것처럼 앞으로 우리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파장이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준 관계자를 비롯해 길을 잃은 금융·경제 전문가들이 한 번쯤은 되새겨볼 가치가 있는 절창((絶唱)이다.(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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