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글로벌 채권시장이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기 위한 '북클로징 (book closing)' 준비로 분주하다. 북 클로징은 회계연도 장부를 결산한다는 의미의 금융권 전문용어다. 은행,자산운용사, 보험사 등 대형 금융기관은 장부상 수익이나 손실이 달라지는 것을 꺼리는 탓에 보통 11월말이면 사실상 채권 거래를 종료한다.

올해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1월 통화정책 결정을 위한 연방공새시장위원회(FOMC)까지 월초에 개최한 덕분에 채권시장의 북클로징이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연준이 자산매입 축소를 일컫는 테이퍼링에 대한 일정까지 공개하면서 기관들의 부담도 한결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월가 전문가들은 이제부터 채권시장은 채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채권시장에 지각 변동에 버금가는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리보가 사라진 채권시장에 대비해야

우선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후 전 세계 금리의 기준 역할을 했던 리보(LIBOR:London inter-bank offered rate·런던 은행 간 금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리보는 각국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등 각국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잣대였다. 자본주의 본진인 영국의 마지막 자존심 가운데 하나였던 리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2년 리보 금리조작 등으로 신뢰를 잃으면서 몰락했다.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런던의 비중이 축소된 점도 리보 퇴장에 한몫한 것으로 풀이됐다.

리보 퇴장으로 변동금리부 시장 가운데 하나인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시장이 바빠졌다. CLO는 신용도가 낮은 기업이 담보를 제공하고 받은 대출을 일컫는 '레버리지론'이 기초자산이다. 은행 등은 기업에 대출해준 뒤 대출채권을 자산유동화회사(SPC)에 넘긴다. SPC는 다시 해당 대출채권에 대해 보증기관 등을 통해 신용을 보강하고 CLO를 발행한다. 이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적용하는 기준금리가 여태까지는 리보였다.

내년부터는 CLO를 비롯한 각종 금리 파생상품에 사용되는 기준금리가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s) 등 새로운 무위험지표금리로 바뀐다. SOFR은 미국 국채를 담보로 하는 하루짜리 레포 거래를 기반으로 산출되는 금리다. 미국 레포금리가 급변하면 함께 불안해질 수도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공표하는 SOFR은 지난 2019년 9월에는 한때 5.35%까지 치솟으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을 공포에 떨게 했다. 당시 은행들의 자금사정이 꼬이면서 레포 금리가 급등한 탓에 혼란은 부추긴 것으로 풀이됐다.

리보를 SOFR로 전환하기 위한 가산금리를 어떻게 적용할지도 새해부터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연준이 기준이 되는 벤치마크 금리 교체를 위해 지난 2014년부터 소집한 실무그룹 '대안 지표 금리 위원회(ARRC)가 권고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시장의 동의을 쉽게 얻지 못하고 있다.

ARRC의 권고안을 따를 경우 리보 기준으로 3개월 0.12%에 불과했던 CLO의 기준금리 수준이 SOFR을 기준으로 하면 0.31%까지 높아질 수 있어서다.



◇프라아머리딜러(PD) 비중 반토막난 레포시장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거래하는 프라이머리 딜러(PD) 24개사의 비중이 갈 수록 작아지고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대목으로 지목됐다. JP모건,시티그룹,골드만삭스 등 대형 투자은행이 포함된 PD들은 그동안 시장 조성자 역할을 해왔다. PD 사는 그동안 호가 갭이 벌어지면 자체적으로 충격을 완충하는 등 채권시장 안정에도 한몫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드-프랑크법 시행 이후 PD사의 역할이 크게 제한을 받게 됐다. PD사가 레포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반토막 수준으로 곤두박질 친 것으로 알려졌다. PD 사가 시장 조성자 역할을 꺼리면서 생긴 공백은 고빈도 매매 등을 일삼은 각종 헤지펀드들이 차지했다.

연준이 이제부터 테이퍼링에 돌입하면서 미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물량을 소화했던 PD사 대신에 고빈도 매매를 일삼는 헤지펀드가 미국채 유통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작은 시세 변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보여서다.

때마침 연준은 지난 3일 FOMC를 열고 미국채 100억달러,주택저당증권(MBS) 50억 달러 등 모두 150억달러에 이르는자산 매입 규모를 이달부터 매달 줄여나가기로 했다. 연준은 그동안 매월 미국채 800억달러 ,MBS 400억 달러 등 모두 1천20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매입해 시중 금리의 하향 안정을 유도해 왔다. 유통시장의 큰 저수지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야

단기물 수익률이 급등하는 가운데 장기물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덜 오르는 등 미국채 수익률이 평탄화된 데 따른 후폭풍도 고려를 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이는 연준이 매파적인 통화정책을 강화하면 경제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됐다. 반대로 연준이 비둘기파적인 행보를 지속하며 인플레이션과 성장을 용인하면 되레 장기물 수익률이 급등할 위험도 있다는 의미다.

어느쪽 방향이든 미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 지수의 변동성에 대한 미국채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지수의 비율은 99%까지 치솟아 지난 2년과 극명하게 비교됐다.

최근 북클로징을 앞두고 깊은 내상을 입은 한국 채권시장 상황이 내년도 글로벌 채권시장의 예고편일 수도 있다. 채권시장 참가자들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 상황에서 시선을 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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