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글로벌 금융시장에 인플레이션 논쟁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세가 좀처럼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1970년대식 인플레이션이 가시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국제유가가 급등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글로벌 공장 노릇을 하는 중국의 생산자물가(PPI)도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발표된 10월 CPI는 3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10월 CPI가 전월보다 0.9% 오르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6.2% 올랐다. 10월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6.2%)은 전달 기록한 5.4% 상승을 크게 웃돌아 1990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월 대비 상승률(0.9%)은 지난 6월과 같은 수준으로 전달의 두 배 수준을 보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중앙은행이면서 사실상 전 세계의 중앙은행 격인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 '공급망의 병목 현상'이 사실은 '일시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준이 공급망 문제에서 놓친 것들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원자재 리서치 헤드인 제프리 커리는 최근의 공급망 병목 현상이 구 체제 경제의 복수일 수 있다며 연준에 포문을 열었다.

커리는 낡은 사회기반시설과 탄소 배출 등을 바탕으로 하는 구 체제 경제에 대한 투자 부족이 최종재에 대한 공급부족과 배송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공급망 문제가 일시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구 체제 경제에 대한 투자부족이 기조적으로 진행됐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심화된 양극화도 구 체제 경제에 대한 수요부족과 투자부족을 견인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양적완화까지 실시하는 등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자산을 보유한 고스득층은 소득이 더 급속하게 불어났다. 공짜나 다름없는 중앙은행의 유동성이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면서다.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가계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더 빨리 쪼그라들었다. 인플레이션 등에 따라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소득 양극화는 구 체제 경제의 수요 부족으로 이어졌다는 게 커리의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큰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 부족은 수요 부족의 직격탄이 됐다. 수요 감소에 따라 구 체제 경제는 이윤이 쪼그라들었고 통상 10년 단위를 사이클로 하는 투자도 줄었다.

때마침 글로벌 경제의 최대 화두가 된 탄소중립 등 친환경 정책의 강화는 구 체제 경제에 대한 투자를 더 가파른 속도로 구축했다.

글로벌 자본도 구체제 경제에 대한 투자를 꺼렸다. 전 세계 탄소의 80% 이상이 구체적 경제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기후변화가 극심해진 데 따라 더 거세진 ESG는 (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열풍은 구 체제 경제에 대한 투자를 죄악처럼 여기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구체제 경제에 대한 투자 부족이 이제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당장 중국의 경우 석탄 발전의 감축으로 이어졌고 알미늄 등 비철금속의 제련 부족 사태를 촉발하고 있다.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상승은 공급망 문제를 넘어서 '애그플레이션'으로 옮겨붙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천연가스 상승이 비료 가격을 큰 폭으로 끌어올리면서다. 농업을 뜻하는 영어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용어로 곡물가격이 상승하는 영향으로 일반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연준의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주장 무색

연준이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해 너무 느슨하게 대응한다는 비난은 상반기부터 이어졌다.

현존하는 최고의 경제학가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등 일부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주장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등을 연초부터 강도높게 비난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연준이 고용시장 부진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논거를 찾는 데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1970년대에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나타났을 때에도 고용 상황과 인플레이션은 큰 상관관계가 없었다며 연준이 하루빨리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면모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준은 그동안 고용시장의 슬랙(유휴자원)이 아직 크고 팬데믹(대유행) 이전 수준에 비해서 일자리의 회복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며 초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조나선 해절 교수, 컬럼비아대학교의 후안 헤레뇨 교수, UC 버클리의 에미 나카무라와 존 스텐슨 교수 등도 최근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는 약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사실상 서머스 전 장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본보 6월3일자 '연준에 맞선 서머스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참조>

서머스와 이들 경제학자는 연준이 1970년대의 실책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연준이 대규모 재정 정책에 따른 수요 견인 효과를 무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준은 1960년대까지 2% 안팎 수준에 머물렀던 인플레이션을 1970년대 후반 6%까지 끌어올리는 실책을 범했다. 당시에도 연준은 생산성을 뛰어넘는 수요 견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인플레이션 광풍을 불러왔다는 비난을 받았다.(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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