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유연한 평균물가목표제(Flexible Form of Average Inflation Targeting)'.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20년 10월 도입한 새로운 통화정책의 틀이다. 물가 상승률이 연준의 목표치인 평균 2%를 넘어도 일정 기간 용인하겠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한 전례 없는 정책 결정이었다. 당시에는 일정 기간이 5년간에 이를 것으로 관측됐고 적어도 2023년까지는 기준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컨센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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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청사의 전경.연합뉴스 제공>



◇후미경 보고 운전하겠다고 선언한 '평균물가목표제'

평균물가목표제는 기존의 경제학적인 통념을 뒤집는 획기적인 정책으로 평가됐다. 통화정책의 금과옥조였던 '선제적'이라는 개념을 유보했기 때문이다. 운전하면서 후미경만 보겠다고 선언한 것과 비슷한 개념으로 여겨졌다.

연준이 어지간한 인플레이션에도 제동을 걸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뉴욕증시 등 위험자산 시장은 지난 2년여 동안 유동성 파티를 만끽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의 우려에도 연준은 마이동풍이었다.

특히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세진 인플레이션 압력을 공급망의 병목 현상 탓으로 돌렸다. 파월 의장은 일시적인 인플레이션(transitory inflation)이라며 시장을 헷갈리게 했다. 파월은 지난해 말까지 자산매입 규모 축소를 일컫는 테이퍼링 가능성까지 제대로 확인해 주지 않았다.



◇갑자기 바뀐 바람의 방향에 당황한 글로벌 금융시장

뉴욕채권 시장에서 미국 국채 수익률이 연초부터 급등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장 참가자들이 뒤늦게 바뀐 바람의 방향을 깨닫고 있어서다. 기준금리가 2023년은 커녕 올해에만 네 차례에 걸쳐 오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됐다.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오는 3월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가 한꺼번에 50bp가 오를 수 있다고 점치고 있다. 심지어 월가의 구루(GURU)인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NYS:JPM) 최고경영자(CEO)는 연준이 6~7회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이먼은 지난 주말 JP모간체이스의 4분기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내 견해는, 네 차례보다 더 많은 금리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며 "여섯 번, 혹은 일곱 번의 (인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의 수요견인 효과도 과소평가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민1인당 1천200달러, 600달러, 1천400달러씩 세 차례에 걸쳐 지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실업급여는 주당 600달러까지 확대됐고, 아동 세액공제 혜택은 자녀 1인당 1천600달러까지 인상됐다. 여기에다 연방 학자금 대출 상환도 유예됐다.

미국의 가계 저축률이 지난해 한때 33.8%로 사상 최고치까지 폭등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미국의 가계저축률은 평소 8% 안팎 수준에 그쳤다. 저축액 절대 규모가 2조7천억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됐다. 증시와 주택가격 등 자산가격까지 급등하면서 미국 가계의 자산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36조달러나 급증했다.연준 집계 기준으로 163조 달러에 육박하고 팬데믹 기간에만 22%의 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됐다.

로렌 서머스 전 재무무장관 등 일부 경제학자는 수요견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될 것이라고 줄기차게 경고했지만, 연준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서머스 등은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가와 펜트업 효과(Pent-up effect)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펜트업 효과는 억눌렸던 수요가 급속도로 살아나는 현상이다. 보통 억제됐던 수요가 외부 요인 해소와 함께 분출하는 특징을 가진다.



◇ 필립스곡선은 폐기된 게 아니라 '동면중'

일부 전문가들은 파월의 연준이 필립스곡선(the Phillips curve)을 송두리째 무시한 오류도 범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필립스 곡선은 영국의 경제학자 필립스가 발견한 실증법칙으로 실업률이 낮으면 임금상승률과 물가상승률이 높고 실업률이 높으면 물가상승률이 낮다는 반비례 관계를 나타내는 곡선이다.

국제결제은행(BIS: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은 코로나 19가 오기 직전인 2019년에이미 선진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한 긴축적 통화정책을 펼칠 필요가 없다고 진단한 바 있다. BIS는 '필립스곡선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What does the Phillips curve tell?)'라는 보고서를 통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낮아졌다"고 실증적으로 설명했다. BIS는 보고서를 통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잠재 성장률의 차이를 일컫는 아웃풋 갭(output gap)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의미 없을 정도로 상쇄됐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연준 이사를 지낸 프레데릭 미쉬킨 콜롬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필립스곡선이 용도 폐기되기 보다는 동면 중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에 대한 오해 혹은 측정 실패가 필립스곡선의 용도 폐기로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연실업률은 취업자의 수와 실업자의 수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실업률로 경제에서 자발적 실업만이 존재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그는 연준이 실업률 자체에만 집착하면서 자연실업률을 제대로 측정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상당한 구인수요와 임금 상승세가 이미 자연실업률에 도달했다는 점을 시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실증적 분석 결과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았던 1970년대에도 자연실업률에 대해 연준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당시 4% 수준으로 추정됐던 자연실업률은 적어도 2%포인트 정도는 더 높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같은 사정은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최근까지도 미국 의회 증언 등을 통해 필립스곡선의 종언을 공공연하게 인정했다.

그는 지난해 의회 증언을 통해"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가 지난 50년간 강했는데, 이제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필립스 곡선'에 따라 실업률과 물가는 반대로 움직인다는 게 경제학의 통설이었지만 기울기가 평탄해지면서 상관관계가 약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지나고 보니 파월의 주장이나 전망이 맞았던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변호사 출신인 파월이 잘 다독인 덕분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팬데믹의 위기를 되레 기회로 잘 활용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운 거의 유일한 진실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주 이름으로 더 친숙해진 '처음처럼'의 저자 신영복 선생은 "역사를 통해서 본 과거는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짐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지혜도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제 시장도 평균물가목표제를 통해 본 연준의 행보에서 지혜를 배워야 할 때가 된 듯하다. (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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