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이번은 다르다(this time it's different).' 전설의 투자자 존 템플턴(1912~2008·사진)이 '영어에서 가장 값비싼 말'이라고 규정하면서 유명해진 경구다. 템플턴은 주가 폭등에 이은 조정이나 경기둔화 등을 두고 사람들은 늘 '이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그는 그런 생각은 완전히 틀릴 뿐 아니라 언제나 값비싼 대가까지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템플턴은 예일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로즈 장학금을 받아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37년 25세 때 월스트리트(월가)로 진출해 기업가치가 낮게 평가된 주식들만 골라내는 뛰어난 안목으로 주목을 받았고, 1954년 투자회사인 템플턴 그로스(Templeton Growth)를 설립했다.

이후 투자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해 글로벌 펀드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월스트리트의 살아 있는 전설', '영적인 투자가' 등의 별명을 얻었다. 사회공헌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의 작위를 받기도 했다.



◇템플턴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말했을까

이런 템플턴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의 상황을 두고 어떻게 말했을까. "이번에도 절대 다르지 않다"가 그 해답이 되지는 않았을까.

해답에 대한 단서는 꼭 1년전 이맘때부터 싹트고 있었다. 2021년 1월27일 뉴욕증시에서 미국 최대의 극장 체인인 AMC 주가가 한때 하루에만 420%나 폭등하면서다. 개장과 동시에 숏스퀴즈가 촉발됐다. 숏스퀴즈는 공매도했던 투자자들이 포지션을 커버하기 위해 주식을 급하게 사들이는 것을 일컫는다. 당시 AMC 객석 판매율은 2019년에 비해 92.3% 감소한 것으로 자체 집계됐다. 실적이 뒷받침될 때까지 험로가 예상된다는 의미였다. 신주 발행 등을 통해 10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하면서 파산 위기에서 겨우 벗어난 정도였다. 이런 주식이 하루에 4배가 뛴다는 게 정상은 아니었다. 투전판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당시에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방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풀이했다. 1년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를 설명하면서 상당 기간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약속했기 때문이다. '유연한 평균물가목표제(Flexible Form of Average Inflation Targeting)'를 고수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물가가 연준의 목표치인 2%를 넘어도 2023년까지는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평균물가목표제의 핵심이었다. 연준이 제동을 걸 일은 없으며 유동성 파티도 계속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파월 의장은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저금리와 자산가치 간의 상관관계가 생각만큼 긴밀하지 않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상시 주식시장 등 자산 가격이 움직인 것은 통화정책보다 재정부양책과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1년만에 표정 바꾼 파월에 월가는 '비명'

파월은 1년이 지난 뒤 매파로 돌변했다. 비둘기파적인 행보를 이어가기에는 인플레이션의 압력이 너무 거세진 탓이다.

파월은 지난 26일 올해 들어 처음 열린 FOMC 정례회의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사실상 긴축적인 통화정책 사이클의 개시를 선언했다.

그는 "FOMC는 여건이 적절하다는 가정하에 3월 회의에서 연방기금금리 인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차대조표의 축소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그는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필요한 수준보다 훨씬 크다면서 지난번 주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축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양적 긴축(QT)도 임박했다는 의미다.

당초 전망보다 매파적인 파월의 발언에 뉴욕 채권 시장 등 글로벌 금융시장은 화들짝 놀랬다. 당초 전망한 것보다 훨씬 매파적인 행보를 보인 것으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채 2년물 수익률은 전날 종가대비 13bp 이상 오른 1.15% 까지 호가를 높였다. 시장의 기준이 되는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채 10년물 수익률도 9.8bp나 급등한 1.87% 수준에서 호가가 나왔다.

뚜렷한 반등세를 보였던 뉴욕증시의 주요지수도들도 일제히 반락했다. 당초 전망보다 더 매파로 변한 파월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면서다.

주식시장 등 모든 자산시장은 탐욕과 공포를 먹고 자란다. 탐욕을 바탕으로 상승세를 보이다가 공포를 바탕으로 조정을 받는 게 순리다. 특히 공포는 경제지표와 개별 주식의 실적 등을 바탕으로 자산의 할인율이 오를 때 작동되기 마련이다. 쉽게 말해 자산의 할인율인 금리가 오를 때 위험자산 등은 조정을 받는다.

AMC 광풍으로 대변되는 탐욕이 기승을 부린지 꼭 1년만에 찾아온 공포에 월가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번에도 과거의 조정 장세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어려운 시절을 버텨내는 지혜가 필요한 듯하다. (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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