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배수연 특파원 = 현인(賢人)의 사전적 풀이는 어질고 총명하여 성인에 다음가는 사람이다. 생존하는 사람에 대해 붙일 수 있는 사실상 최고의 찬사인 셈이다. 성인(聖人)은 돌아가신 분이거나 종교적 성격이 짙어서다.



◇버핏이 현인인 까닭은…시간을 이기는 투자 철학 고수

이런 찬사를 받는 거의 유일한 경제 금융계 인물이 워런 버핏(사진)이다. 종교지도자도 아닌 주식 전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이 현인이라는 칭송을 받는 이유를 낱낱이 거론하는 일은 너무 상투적이다. 가치투자, 검소한 사생활, 천문학적 규모의 기부 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철 지난 유행가처럼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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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관점에서 버핏이 현인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정작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바로 버핏이 장기 시계열의 관점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투자 원칙을 지켰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버핏은 이자와 원금의 합이 다음 해의 원금으로 작동하는 복리의 마법에 대해 끊임없이 설파해 왔다. 버핏의 투자철학이 낡은 구식이라는 조롱을 한두 번 받은 게 아니다.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대에도 버핏의 시대는 끝났다는 주장이 난무했다. 가상화폐, 기술주, 밈(meme) 종목이 광란의 파티를 벌였던 팬데믹(대유행) 격동기에도 버핏은 고집투성이고 시대착오적인 투자자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짜 돈으로 즐겼던 유동성 파티가 끝나가면서 버핏의 진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버핏이 올해초부터 지분을 늘렸던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은 벌써 100%나 올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편입 종목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서다.

버핏은 실적이 뒷받침되는 종목에 투자하는 철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투자철학은 애플(NAS:AAPL), 뱅크오브아메리카(NYS:BAC), 아메리칸 익스프레스(NYS:AXP), 코카콜라(NYS:KO), 크래프트하인즈(NAS:KHC), 무디스(NYS:MCO), 버라이즌(NYS:VZ), US뱅콥(NYS:USB), 셰브런, 뱅크오브뉴욕멜론(NYS:BK) 등의 투자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인류 최고의 지성인 뉴턴은 거품에 투자했다가 거액 날려

근대 물리학의 근간을 세운 천재 아이작 뉴턴은 버핏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투자자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는 인물이다. 최고의 수학적 사고 능력을 가진 뉴턴이 시간을 이기지 못한 투자로 낭패를 봤기 때문이다.

뉴턴은 1720년 무렵 영국을 투자 광풍으로 몰고 갔던 사우스시 컴퍼니(South Sea Company)에 투자했다가 사실상 거의 전 재산을 날렸다.

뉴턴이 처음부터 투자에 실패했던 것은 아니다. 사우스시 컴퍼니는 영국 국채를 인수해서 자체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해주는 사업을 제안해 설립된 회사다. 영국 정부는 중남미 지역의 무역독점권을 회사에 부여했고 이 부분이 회사의 수익원이었다. 당시로서는 유망한 사업모델이었다. 뉴턴도 회사의 사업 모델에 매력을 느껴 거액을 투자했다. 뉴턴은 처음에는 지금 시세 추정으로 20억원에 이르는 차익을 거두는 등 성공적인 투자 성과를 일군 것으로 알려졌다.

뉴턴은 이후 사우스시 컴퍼니 시가총액이 유럽 전체의 다섯 배에 이른 것을 보고 추가 투자에 나섰다. 사우스시 컴퍼니는 당시에는 신비의 대륙인 남아메리카에서 엄청난 이윤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황금의 도시가 즐비할 것으로 알려졌던 남미의 진상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공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사우스시 컴퍼니의 사업모델을 복사하는 '미투(me too)' 형태의 짝퉁 사우스시 컴퍼니도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결국 인출 요구가 이어졌고 뉴턴은 지금 시세 추정으로 60억원에 이르는 돈을 잃고 화병만 얻었다. 회사가 설립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데 10년 남짓 걸렸을 뿐이다. 뉴턴은 영원 무구한 우주의 질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면서도 불과 10년 만에 사라질 거품을 간파하지 못했다.



◇역사가 반복된다면 현대판 '사우스 시'는?

뉴턴을 화병으로 드러눕게 했던 사우스시 컴퍼니의 원형은 프랑스의 미시시피 컴퍼니(Mississippi Company)였다. 스코틀랜드 출신 경제학자로 알려진 존 로가 설립한 미시시피 컴퍼니는 프랑스령 루이지애나의 미시시피 지역에 대한 무역 독점권을 바탕으로 주식을 발행했다. 해당 주식은 발행가의 40배까지 치솟으면서 프랑스 전체를 투기광풍으로 몰아넣었고 마침내 프랑스 절대 왕정 붕괴의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시시피 컴퍼니도 현금 흐름은 창출되지 않고 신주 불행 등을 통해 배당금 등을 지급한 전형적인 폰지형태의 기업이었다. 미시시피 컴퍼니도 사우스시 컴퍼니와 거의 비슷한 시대에 파산했다. 그 파장은 일반 국민들에게도 미쳤고 결국은 절대 왕정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지금의 사우스 시 컴퍼니와 미시시피 컴퍼니는 무엇일까. 혹시 가상자산 루나(LUNC) 폭락 사태로 사법 당국의 수사까지 받아야 할 처지로 몰락한 발행사 테라폼랩스 같은 회사들은아닐까.(뉴욕특파원)

n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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