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8월은 미국 국채 시장이 비교적 한산한 달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정책 결정을 한 달 쉬어가기 때문이다. 대신 연준은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연은)의 주최로 매년 8월 와이오밍주 피서지 잭슨홀에서 글로벌 중앙은행의 국제경제 심포지엄인 '잭슨홀 회의'를 개최한다. 캔자스시티 연은에 따르면 올해 잭슨홀 회의는 오는 25~27일 대면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3년만이다.









<잭슨홀 풍광:연합뉴스 제공>



◇ 잭슨홀 회의 기다리며 연준 양적긴축 개시에 촉각

미국채 시장도 매년 잭슨홀 회의에만 시선을 고정하며 쉬어가는 거래 패턴을 보여왔지만 올해는 사정이 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잭슨홀 회의가 끝난 직후인 9월부터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보다 더 큰 충격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양적긴축(QT)을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연준은 9월부터는 매달 미 국채 최대 600억 달러, 주택저당증권(MBS) 등 기관채 최대 350억 달러씩 축소할 예정이다. 연준은 이미 6월부터 매달 최대 국채 300억 달러, 주택저당증권(MBS) 등 기관채 최대 175억 달러씩 줄여왔다.연준이 보유한 미국채는 전체 시가총액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MBS의 3분의 1도 연준이 사들였다.



◇ 미 재무부도 미 국채 수급 균열 우려한 행보 강화

이제 연준의 보호막이 본격적으로 해체되고 있어 미국채 수급에 엄청난 균열이 올 수도 있다. 이런 우려를 의식한 탓인지 미국채 발행 당국인 미 재무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 3일 20년물 등장기물 국채의 분기 입찰 규모를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 재무부는 이달부터 10월까지의 미국채 입찰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할 예정이다. 석달동안2년, 3년, 5년,7년 만기 채권 입찰 규모가 매달 10억달러씩줄어 10월 말에는 각각 30억 달러씩 감축될 전망이다. 장기물인20년물 국채 입찰 규모는 훨씬 가파른 속도로 줄어들 예정이다. 이달부터20억달러씩 줄어서다.

미 재무부가 장기물 발행 비중을 축소한 대목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국채 장기물 수익률이 단기물 수익률을 웃도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발행 당사자인 재무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낮은 발행금리)에 장기물을 조달할 기회를 일삼아 외면하는 행보인 셈이다. 그만큰 장기물 수급 상황에 대해 발행 당사자인 재무부도 우려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됐다.



◇ SLR 완화 없어 대형 은행도 시장 조성 외면

연준이라는 비빌 언덕이 사라진 상황에서 마땅한 시장 조성자 역할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은 또 다른 걱정거리다. 미국 대형은행에 적용됐던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supplementary leverage ratio) 완화도 지난해에 이미 종료된 상태다.

SLR은 총자산 2천500억달러 이상인 미국의 대형은행에 적용되는 레버리지 비율로, 총 익스포저 대비 자기자본을 3% 이상 유지하도록 한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규모와 상호 연계성, 활동성 등을 고려해 선정하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글로벌은행(GSIBs)에 선정됐다면 이 비율을 5% 이상 유지해야 한다. 미국의 JP모건,시티그룹,골드만삭스 등 대형은행 8곳이 해당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의 건전성 강화 차원에서 나온 조치다. 연준과 거래하는 프라이머리 딜러(PD) 24개사 대형 은행들은 미국채를 보유하는 데 너무 큰 비용이 소요되도록 관련 규정이 개정됐다. 해당 규정으로 대형은행들의 건전성은 강화됐지만 전통적인 미국채 시장에서 대형 은행들의 역할은 큰 폭으로 축소됐다. JP모건,시티그룹,골드만삭스 등 대형 투자은행이 포함된 PD들은 그동안 시장 조성자 역할을 해왔다. PD 사는 그동안 호가 갭이 벌어지면 자체적으로 충격을 완충하는 등 채권시장 안정에도 한몫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채 시장의 큰 손인 미국 대형 은행의 손발이 묶였다는 의미다.



◇ SEC,고빈도 매매 일삼는 헤지펀드 정조준…생보사 RP시장 타격 우려

대형 은행의 빈자리는 그동안 고빈도매매(High-Frequency Trading)를 일삼는 각종 헤지펀드들이 차지했다. 연준의 양적 긴축이 본격화되면 미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물량을 소화했던 연준과 대형은행이 사라진 빈자리를 작은 시세 변동에도 고빈도 매매를 일삼는 헤지펀드가 시장을 주도할 수도 있어서다.

그나마 헤지펀드도 미국채 시장에서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헤지펀드의 미국채 시장 참여를 제한할 수 있는규제를 입안중이기 때문이다. SEC는 한달에 250억달러 이상 거래하는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딜러(dealer)로 등록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헤지펀드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해당 규정이 적용될 경우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를 위반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헤지펀드는 자기자본이 적어 조달된 자금을 바탕으로 운용하는 경우도 많아 딜러로 등록할 경우 자금 운용에 제약을 받을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제도가 본격 도입될 경우 미국채를 투기적 수단이 아니라 헤지 수단으로 운용하는 일부 헤지펀드까지 시장에서 구축할 우려가 제기됐다.

단기 자금 시장인 환매조건부채권(RP:repurchase paper) 매매의 주요 당사자인 대형 생명보험회사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해당 규제가 미국채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RP시장에도 메가톤급 파장을 미칠 수 있어서다.

SEC는 시장의 우려에도 해당 제도 도입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해당 제도가 헤지펀드의 과도한 레버리지를 방지해 시장이 급등락하는 이른바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를 방지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SEC는 거래에 참여하게 되면 당연히 딜러로서 규정에 따라 규제되는 게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고빈도 매매가 시장 질서 교란 요인이라는 점에서 되레 순기능이 크다는 게 SEC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이제 글로벌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SEC가 미국채 시장을 어떻게 규제하는 지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해당 규제가 도입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전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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