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환율은 한 나라의 통화와 외국 통화의 교환 비율을 일컫는다. 금리 수준과 함께 각국의 경제 체력을 반영하는 돈의 값이라는 의미다. 돈의 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외환위기로 이어지고 거시경제 전반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아직도 깊은 상처로 남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도 환율이 지나치게 약해지는 외환 위기로 인해 촉발됐다.

이 때문에 글로벌 경제가 위험에 노출될 때마다 이른바 안전통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변동성이 작아 자산 가치 급변동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세계 각국의 통화 가운데에도 스위스 프랑화와 일본 엔화가 대표적인 안전통화였다. 특히 이웃인 일본의 엔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안전통화였다. 일본은행(BOJ)이 장기간 제로금리 정책을 고수하는 등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했지만 일본 엔화의 위상은 지난 30여 년간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일본 엔화는 더는 안전 통화 지위를 지키지 못할 정도로 변동성이 확대됐다. 달러-엔 환율은 올해 1월 6일 달러당 102.560엔을 저점으로 지난 7일 연고점인 144.991엔까지 41.6%나 급등했다. 달러-엔 환율 상승은 엔화가 약해졌다는 의미다. 8개월 남짓한 기간에 엔화의 가치가 폭락했다는 의미다. 어지간한 신흥국이었다면 외환위기로 치달을 수준이다.



달러 엔 환율의 일봉 차트








안전 통화로서 엔화의 지위에 대한 이상 징후는 일본의 상반기 경상수지가 급감한 대목부터 감지됐다. 일본은 한때 '메이드인재팬(made in Japan)' 혹은 '일본 주식회사'로 불리며 각종 공산품에서 글로벌시장을 석권했다. 달러-엔 환율의 가파른 상승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일본의 올 상반기 경상수지는 전년 동기 대비 63.1% 급감한 3조5천57억엔 흑자에 그쳤다. 상반기 경상흑자 규모로는 2014년 이래 8년 만에 가장 적었다. 엔화 가치가 급락한 가운데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영향 등으로 풀이됐다.

해외 자산의 이자와 배당 소득 등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수지가 연간 20조엔에 달하지만, 올해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2020년 기준 356조9천700억엔의 대외순자산을 보유해 30년 연속 세계 1위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망령에 시달리면서도 일본 엔화가 안전 통화로서 지위를 꿰찬 원동력도 대외순자산에 바탕을 둔 경상수지 흑자 기조에 있었다.

월가는 일본이 1980년 이후 42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경우 엔화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월가는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일본 증시에 대한 포지션을 확대하는 등의 방법으로 엔화 약세를 보정해 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서만 일본 증시에서 6천600억엔 상당의 자금을 뺐다. 엔화 약세가 더는 외국인 투자자를 유인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엔화를 환전해서 해외 자산을 취득하는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는 되레 늘고 있다. 미국 국채 수익률이 급등세를 거듭하면서 일본 국채(JGB)와 스프레드가 300bp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어서다. 일본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0.25% 수준에 묶여 있는 가운데 미국채 10년물은 지난 10일 종가 기준으로 3.26%에 호가됐다.

월가는 BOJ가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할 경우 엔화가 마땅한 지지선을 찾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BOJ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글로벌 주요국 중앙은행이 긴축 행보를 강화하는 가운데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했다.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도하도록 상한 없이 필요한 금액의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수익률 곡선 통제(YCC) 정책은 되레 강화됐다. BOJ가 10년물에 이어 7년물 국채도 지정가 국채 매입 오퍼레이션 대상에 추가했기 때문이다. BOJ가 매달 시장으로부터 사들이는 일본 국채 규모만 20조엔으로 팬데믹 직전까지 YCC가 절정이었던 지난 2016년 대비 2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빚 앞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다. 일본 엔화가 경상수지 적자 등을 계기로 월가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지 우리도 지금부터 눈여겨봐야 할 듯하다. 소규모 개방 경제인 우리는 일본 엔화의 충격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어서다.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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