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3조~4조원 대출 지원…낮은 금리 제안으로 수익은 미미
장기적으로 은행채 되레 늘어날 수 있어 '부작용' 고민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정원 기자 = 시중은행들이 연내 2조원을 포함해 최대 3조~4조원 규모의 한국전력공사 신용대출에 동참하기로 한 것은 한전채의 대규모 발행이 자금시장 경색 상황을 가중시키고 있어 이를 해소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정부가 ''50조원+α' 규모의 회사채 및 단기자금시장 안정화 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은행권에서도 95조 원 규모의 지원 방안을 추가로 제시했지만, 쏟아져 나오는 한전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금융시장을 둘러싼 유동성 불안을 잠재우긴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한전 대출이 늘어나는 것이 은행채 발행 압력을 키우는 '풍선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데다, 대출로 돌려 유동성을 지원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은행들의 고민도 적지 않다.

◇대출금리 5%대서 결정될 듯…매력적일까 고민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주요 은행들은 이날 오전 한전으로부터 운영자금 차입 금융기관 선정 제안요청서(RFP)를 받고 대출 규모 및 금리 수준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한전은 운영 자금 조달 목적으로 5천억원 이상의 차입액을 제안했다.

대출금 사용처는 미정이나,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한전채 6천300억원 상환 또는 전력 대금이나 인건비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한전은 이번 대출을 시작으로 올해에만 은행으로부터 2조원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은행권에선 한전채로 인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에도 추가 대출을 받아 최대 3조~4조원 규모의 대출이 실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지주들은 최근 금융당국과의 시장점검회의 등을 통해 자회사인 은행들이 약 1조원 안팎의 한전 대출 실행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한전이 채권 발행 대신 은행 대출을 통해 운영 자금을 마련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전채가 채권시장 자금경색의 주범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자금조달 다변화를 통해 시장에 자금이 다시 돌게끔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은행권에 대한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비율 한시적 완화, 은행채 관련 일괄신고서 규율 완화 등을 통해 은행들이 적극적인 물량 조절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한전 대출을 확대하는 게 은행들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다.

'AAA' 등급의 한전채는 초우량 공사채에 속한다. 대출이 많이 나갈수록 이자이익이 늘어나는 데다, 우량채권에 돈 떼일 가능성도 적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리 인상기 은행에 예·적금으로 자금이 몰려 여력이 충분할 뿐만 아니라, 이자 수익이 생기는 만큼 여력만 되면 대출 실행에 나서려고 할 것"이라며 "금융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기회라고 본다"고 말했다.

관건은 대출 조건이다.

정부와 한전은 내심 회사채보다 낮은 대출금리를 바라고 있다.

대출금리는 CD 91일물에 가산금리(스프레드)를 더한 변동금리로, 전일 기준 CD 91일물 금리가 3.97%인 점을 감안하면 은행들이 가산금리(스프레드)를 1%대로 제시해야 6%대를 바라보고 있는 한전채보다 낮은 대출금리가 형성될 수 있다.

한전 입장에서도 은행들이 회사채 발행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하면 굳이 신용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으로 5% 초중반대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전채 피하려다 은행채 늘어날라…대출여력 '관심'
은행권의 대출여력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이 올해 들어 최대 실적을 올린 데다 규제 완화 등으로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금융시장에선 한시적 유예 조치만으로 수십조원 규모인 한전채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부담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한전은 올들어서만 26조6천200억원 규모의 한전채를 발행했다.

같은 기간 만기 물량이 4조2천50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순발행 규모만 22조원 이상이었던 셈이다.

반대로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이 나왔던 23일 이후 은행권은 은행채 발행을 사실상 멈춘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권 입장에서도 신용도가 초우량한 한전 대출을 늘리는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니다"며 "여력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은행권이 '은행채 발행 최소화' 기조를 유지 중인 가운데 장기적으로 한전 대출이 늘어나는 것이 은행채 발행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지난 23일 단기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이 나온 이후 만기를 맞았던 1조2천억원 안팎의 은행채를 모두 상환했고, 같은 기간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NH농협은행도 3천억원 안팎의 은행채 만기 물량에도 추가 발행을 자제했다.

한 금융지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은행채 발행을 현재 멈춘 상태다. 여전히 모든 대출 등과 관련해 부실 가능성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이자수익이 이를 상회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어 (유동성 공급 역할과 관련한) 여력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단기적으론 한전이 은행권 대출을 활용해 한전채 규모를 조정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론 유가 안정과 전기요금 인상 등의 요인을 활용해 적자 규모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의 도움이 있다면 한전채가 시장에 주는 충격도 어느 정도 상쇄될 것으로 보인다"며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가격 안정화와 요금 인상 등이 작용하면 해당 이슈도 어느 정도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2시간 더 빠른 15시 32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