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현금 마련이 우선인 공제회…당국 압박에 불만 커져

(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11월 들어 연기금 및 공제회가 장외 채권시장에서 8천억원 가까이 순매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말부터 금융당국이 채권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연기금에 채권 매입 등 협조를 요청했지만, 연기금은 오히려 채권 매도로 돌아서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다.

16일 연합인포맥스의 채권별 거래종합 화면(화면번호 4556번)에 따르면 연기금(기금·공제)은 이달 들어 전날까지 장외시장에서 총 7천891억원어치 채권을 순매도했다.

채권 종류별 순매도액을 보면 국채는 1천억원이 안 됐지만 공사공단채는 3천480억원, 금융채는 4천210억원에 달했다. 주로 공사채와 금융채 위주로 채권을 순매도했다는 뜻이다. 순매수는 통안채(802억원)에 국한됐다.

연기금의 이달 채권 순매도세가 특히 주목되는 것은 금융당국이 별도로 연기금 및 공제회에 채권시장 안정화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이후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말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은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주요 연기금 및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채권의 과도한 추종 매매나 대규모 환매, 자금 이탈 등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특히 국민연금에는 신용보증기금이 발행하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적극적으로 매입해달라고 '콕' 집어 주문하기도 했다.

이달 초에는 국민의힘 경제안정특별위원회가 "회사채 시장이 어려운데 연기금 등이 채권시장 안정화를 위해 적극 매수자로 나서도록 금융위에 유관기관과 협의할 것을 요구했다"며 자금경색 국면을 풀고자 연기금을 압박하기도 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증권사들이 유동성 급감으로 부도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주요 연기금이 앞장서 올해 6월 대비 전단채의 잔액 50% 이상 보유 의무화 등 시장 정상화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연기금은 지난달만 해도 장외시장에서 채권을 공격적으로 매입하는 흐름을 보였다. 지난달 채권 순매수액은 3조8천617억원으로 월간 기준 올해 최대치를 찍던 터였다. 그만큼 채권에 낙관적이었고 이달 들어 시장도 다소 진정된 데다 정부와 국회가 양면에서 채권매입을 압박하고 있음에도 연기금이 오히려 채권 순매도로 돌아선 것은 이례적인 모습이다.

연기금과 공제회로선 당국의 압박보다도 당장 현금을 더 마련하는 것이 더 급하다는 분위기로 보인다. 특히 공제회는 수익자 회원들의 대출 수요와 출자 운용사의 캐피털콜에 대비하는 것에 더해 내년도 투자를 위한 현금을 비축하려면 채권을 팔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공제회의 경우, 지역단위 조합의 현금 수요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자금운용에 부담 요인이다. 과거 초저금리 환경에선 지역단위 조합이 현금을 자체적으로 쌓아둬도 별다른 이득이 없었기 때문에 중앙회로 대부분 현금을 보냈다. 하지만 금리 급등기에 공제회의 대출 이율이 시중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지역단위 조합에서 중앙으로 돈이 올라오지 않는 상황이 몇 달째 이어지는 중이다.

그만큼 공제회는 운용할 자금이 부족해지고 캐피털콜과 새로운 투자자금을 마련하려면 채권, 특히 회사채 매각에 우선 손이 간다는 게 공제회 안팎의 분석이다.

연말을 앞두고 자산 배분 조정을 위해 채권을 덜어내는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연기금 관계자는 "기관투자자들이 올해 일찌감치 북클로징에 나서는 분위기에서 공제회도 자산 배분 조정 차원에서 채권 투자자금을 미리 회수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며 "정부와 국회의 요청 같은 압박이 있긴 한데 당장은 시장이 안정을 찾아가는 만큼 먼저 현금을 만들어야 나중에 시장이 어지러워져도 채권을 매입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당국의 연이은 압박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연기금 업계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지냈던 한 관계자는 "연기금이나 공제회는 납입자들의 복지와 미래를 위한 자금이고 그것이 최우선인데 그 돈을 왜 정부가 아직도 옛날처럼 쌈짓돈 다루듯 통제하려 드는지 알 수가 없다"며 "당국이야 연기금 돈으로 당장 시장이 안정되면 성과 냈다고 자찬하고 자리를 뜨면 그만이지만 그에 따른 수익 감소나 손실은 회비 납입자들이 떠안게 되는데 책임은 누가 지나"라고 꼬집었다.
 

장외시장 채권별 거래종합 화면(화면번호 4556번)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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