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외신기자간담회에서 비둘기파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외신기자클럽 기자간담회 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언론회관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1.18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지난주 개최된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 발언과 비교해보면 불과 3거래일만에 일어난 큰 변화다. 채권시장은 그동안 캐스팅 보트임을 강조하면서 입장 표명을 삼가던 이 총재가 '커밍아웃'을 하자 강세로 환영했다.

19일 한은에 따르면 이 총재는 전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지금은 이미 금리가 높은 수준' '(최종 기준금리) 3.75%를 생각했던 사람들은 예상을 조정했을 것' 등 불과 며칠 전의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찾아볼 수 없던 비둘기파적인 발언들을 내놨다.

이 총재는 물가에 대한 금리 대응과 관련해 "작년에는 물가상승률이 5%를 넘었고 또 가속화가 됐기 때문에 경기나 부동산 시장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금리 올리는 게 우선순위였다"면서도 "지금은 이미 금리가 높은 수준에 있으니 이것이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봐야한다"고 평가했다.

금통위 발표를 향후 금리 동결로 해석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반박한 지난주의 발언보다 훨씬 더 동결에 가까운 어조다.

금통위의 구도에 대한 단서도 추가됐다.

이 총재가 지난주에 소개한 금통위의 구도는 최종 금리 수준을 3.5%로 제시하는 3명과 3.75%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3명으로, 숫자만 보면 팽팽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총재는 3.75%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금리 하락으로 반응한 채권시장의 해석을 사실상 승인하는 발언을 내놨다. 7번째 투표권이 있는 이 총재의 성향이 비둘기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총재는 전일 "금통위 세 분은 3.5%로 생각하고 세 분은 3.75%로 명시했기 때문에 그것에 따라서 과거에 3.75%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많은 분이 당연히 예상을 조정했을 것"이라며 "그래서 (시장금리가) 떨어지는 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스팅 보트임을 강조하면서 의견 표현을 삼가던 이 총재는 불과 3거래일만에 비둘기파로 변신했다.

이 총재는 지난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3대 3일 경우에 제가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서 결정을 해야 될 때 말씀드리겠다"며 "향후 금리에 관해서는 전망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있는데 제가 거기서 의견을 내서 한쪽 편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 이 총재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을 3대 우려 요인 중 하나로 꼽으면서 한은이 대응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가계부채의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금리 인상이 부담스러운 사정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단기부채 및 변동금리 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며 "이에 통화 긴축 및 주택가격 하락에 대한 소비지출 및 경기의 민감도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금리 인상 효과의 누적으로 인플레이션과 경기 간에 상충 관계(trade-off)가 커질 수 있으며, 이는 통화정책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만기가 1년 이하인 가계부채의 비중이 전체의 3분의 1 수준이며,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약 80%다. 변동금리 비중은 미국(2%), 영국(8%) 등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국가로는 호주(78%), 노르웨이(96%) 등이 있다.

이 총재는 상황에 따라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며 비둘기파적인 발언을 완화하려 했지만 이미 성향을 확실히 노출한 뒤라 별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한은이 생각한 경로(path)보다 물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금리를 더 올릴 수도 있고, 반면에 한은이 생각하는 경로보다 물가가 내려간다고 하면 (금리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는 성장과 금융안정을 고민하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은 비둘기파 색채를 드러낸 이 총재의 간담회에 강세로 반응했다. 국고 2년과 3년 금리는 각각 기준금리인 3.5%보다 낮은 3.434%, 3.390%에 마감했다. 기준금리보다 낮은 중단기 국고채 금리는 이르면 연말에서 내년 사이에 기준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는 시장 일각의 판단을 반영한 결과다.

증권사의 한 채권 운용역은 "물가 경로에 따라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고 했지만 본심처럼 들리지는 않는다"며 "금통위를 완화적으로 해석한 채권시장을 이 총재가 응원하는 듯한 기자간담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 총재가 시장의 금리 레벨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도 거의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j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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