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분 소유 20년 관치 논란 벗어나지 못해
"내치가 더 문제"…리더십의 정치화 벗어나야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우리금융지주의 리더십 위기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출신 간 갈등뿐 아니라 오랜 기간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면서 외풍에 시달려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권에 따라 누가 권력을 잡고 회장·행장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은행 임원들은 본업에 집중하기보다 줄 대기에 신경써 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한 우호세력이 돌아가면서 인사하는 이른바 '내치(內治)'의 악순환이 이어졌고, 각종 사건·사고가 이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권에선 이러한 '리더십의 정치화'가 고착화하면서 오랫동안 곪아온 상처가 터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도 영업이다"…주인 없는 은행의 고질병

우리은행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정부가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된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을 통합해 탄생하면서 정부 소유 은행이 됐다.

이후 광주·경남·평화 등 3개 은행과 은행 등 하나로종합금융회사가 추가로 통합되면서 지주회사가 설립됐다.

이 과정에서 공적자금만 12조원 넘게 투입됐고,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로 정부가 20년 넘게 주인 역할을 해왔다.

정부가 우리은행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정권 교체 때마다 고질적인 외풍에 시달려왔다.

정부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던 2000년 초반에는 낙하산 인사가 줄줄이 내려왔다.

재정경제부 출신인 박병원 전 회장은 물론 이명박 정권 때는 고대 인맥인 이팔성 회장이 '4대 천왕'으로 불리며 군림했다.

정부의 의중이 CEO는 물론 임원 인사에도 쉽게 반영됐고, 정치권 인사들과 학연·지연으로 닿아있는 인사들이 승승장구 했다.

연말 인사 시즌이 되면 정치 인맥의 힘을 빌려 발탁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우리은행에서 임원으로 승진하려면 '정치'는 필수가 되어버렸고, '정치도 업무의 일부이며 영업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농담이 진담처럼 흘러나왔다.

이렇다 보니 인사·채용·대출 등 각종 청탁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17년 채용 비리 사태는 대표적인 예다.

당시 신입사원 공채 채용 과정에서 우리은행이 국정원 직원과 VIP고객의 자녀, 대학 부총장·병원 이사장 요청 등을 받아 만든 지원자 명단 문건이 공개되기도 했다.

은행 한 직원은 "새로운 CEO가 선임되면 경영의 연속성보다는 전임자 색깔 지우기 위해 물갈이 인사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누구 라인으로 찍히면 일반 직원도 인사 때 불이익을 당한다"면서 "이러한 조직 문화가 굳어지면서 불투명한 인사 관행과 내부 권력 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관치보다 내치가 문제"…투명한 기업문화 '절실'

정치금융이 외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은행이 여러 형태로 정치 조직화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금융은 회장 또는 행장 임기가 만료되기 전부터 안팎으로 투서들이 난무해 왔다.

투서는 청와대나 금융감독원뿐만 아니라 사정 당국 곳곳에 전달됐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까지도 전달되는 투서들 가운데 우리은행 관련된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경영진과 노조와의 결탁 의혹도 한 축이다.

경영진이 노조가 추천하는 일부 승진 대상자들을 받아들여 주는 대가로 업무 추진에 대해 태클을 걸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 등 서로 윈윈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는 말들이 무성하다.

이러한 권력 나눠먹기를 한다는 비판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

올 초 한 부서장의 '갑질 논란'과 극단적 선택을 한 전직 노조 간부와 관련된 인사청탁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적 외풍에 대한 부작용을 외면해온 것은 아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이팔성 전 회장이 물러날 당시 우리금융의 청탁 등 정치화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 바 있다.

이팔성 회장 뒤를 이어 자리에 오른 이순우 전 회장도 취임사부터 "인사청탁과 줄 대기가 성행하는 정치적인 조직으로 낙인이 찍혔다"고 언급하며 조직 쇄신을 시도했다.

박상용 사외이사는 2017년 우리은행 과점주주 경영체제가 첫 시동을 건 당시 차기 행장을 뽑는 과정에 있어 "영업력과 추진력도 중요하지만, 우리은행이 정부 소유였을 때 쌓인 부정적인 기업문화를 깨끗이 불식할 혜안과 조직 갈등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을 뽑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은행 내 고질적인 문제를 인지하고, 공정한 제반 시스템이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이사회의 역할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최근에는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내치(內治)'를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주인 없는 금융회사 CEO가 한번 선임되면 견제받지 않고 장기간 자리를 유지하는 관행을 비판하면서 "관치뿐 아니라 내치도 문제"라고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십수 년 넘게 쇄신 요구가 있었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오도록 변하지 않은 건 그만큼 현 임직원들의 정치화가 굳어졌기 때문"이라며 "우리은행이 투명하고 공정한 기업문화가 다시 뿌리내릴 수 있는 경영진이 선임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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