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재헌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현재 금융통화위원회가 가득한 안갯속에 있다고 비유했다. 방향을 모르니 자동차를 멈춰야 한다고 했지만, 서울채권시장은 다르다. 저마다의 중기 전망을 설정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바쁘다.

그 결과 채권시장의 포지션 다툼이 격화되는 형국이다. 스와프 시장의 역외(외국인) 세력도 매매 방향이 엇갈려 변동성의 뇌관이 될 전망이다.

24일 연합인포맥스 연결 국채선물 일별 추이(화면번호 3631)에 따르면 이번주 들어 전 거래일까지 3년 만기 국채선물(KTB)의 거래량은 일평균 17만1천814계약으로 집계됐다. 금통위가 진행된 전 거래일의 거래량이 지난해 4월 14일 금통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일평균을 더욱 끌어올렸다. 이달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채권가격 역시 전 거래일 대비 큰 변화가 없었지만, 거래가 이례적으로 많았다는 평가다.

국채선물은 서울채권시장의 초단기 움직임을 가장 빨리 반영한다. 이 부문의 거래가 이달에 유독 활발한 상태다. 이번주 움직임만 보면 일평균 거래량이 패닉 때 수준이다. 금리가 박스권에 갇힌 시소 장세였는데도 분주했다.



시장참가자들은 뷰가 점차 갈라지면서 논리 싸움이 치열해지는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매파적인 연방준비제도(Fed)를 따라 현재보다 높은 금리 박스권을 설정하는 부류와 피벗(정책전환)을 의식한 세력이 치열하게 부딪힌 흔적이라는 뜻이다.

은행의 채권 운용역은 "미국 고용지표 이후의 국채선물 흐름을 보면 외국인을 중심으로 한 매도가 대거 나왔다가 다시 매수가 우르르 출현하는 식이었다"며 "장 후반까지 공방이 치열하고 특히 매수세가 선전하면서 끝날 때는 단순 종가관리보다는 정도가 심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주 금통위를 앞두고 애널리스트 폴은 100% 동결이었지만, 비금융권 종사자 폴에서 인상이 30% 가까이 나왔다는 얘기도 들려 긴장감이 상당했다"고 덧붙였다.

채권시장 참가자들의 매매 싸움은 이창용 총재가 거드는 상황이 됐다. 그는 전일 금통위에서 물가·경기를 둘러싼 극심한 불확실성에 대해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해 어느 방향인지 모르면 차를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적 고민을 토로한 발언이었지만, 시그널(신호)이 없어 시장이 스스로 결정하는 타이밍으로 해석한 것이다.

일부 시장참가자들은 중앙은행의 매파 신호를 따라갔고, 다른 세력은 대치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기자간담회 중 약세였던 채권금리가 이후 강세로 전환했다. 국채선물 거래도 이에 맞춰 증가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2월 금통위에서 총재의 긴축 사이클 마감 부정과 금통위 내 1:5 의견 구도 자체는 꽤 자극적이었지만 연준의 긴축 장기화 부담과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한 잘 포장된 이벤트였다"고 진단했다.

국채선물과 같은 금리 기반 파생상품인 금리스와프(IRS) 시장에서는 역외마저 엇갈린 뷰가 상당하다는 전언이다. 중장기 구간까지 변동성에 노출되고 있다. 포지션 공방이 격해지면서 당국의 작은 발언에도 민감해지는 시나리오가 예상됐다.

증권사의 채권 관계자는 "채권 패닉 이후 작년 10월 금통위부터 도비시한 분위기가 주류를 이뤘기 때문에 물가 중심의 통화정책 강조가 크게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어제도 이창용 총재가 한-미 금리차에 대해 쿨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런 스탠스가 바뀌면 시장이 혼란 속으로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기 부진과 수출, 공공요금 동결 등 정책 변수가 시장을 덮고 있다"며 "금통위 날짜 변경을 두고 어제 정책 신뢰 하락 문제도 제기된 만큼 한은과 정부의 공조와 시그널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jh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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