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손지현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사태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국내 은행권에도 영향을 줄 지 관심이다.

다만, 특수은행 성격의 SVB의 사업구조가 국내 은행들과는 달라 이번 사태가 미칠 여파는 제한적일 것이란 평가가 주를 이룬다.

특히 스타트업에 대한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SVB의 경우 국내 은행들과 자산 구성과 운용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게 은행권 안팎의 반응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가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하고, 그로 인해 파생될 은행권의 건전성 문제로 확장할 경우 예상치 못한 파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더욱이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가 여전히 은행권의 건전성 문제를 촉발할 트리거로 남아있는 만큼 시장 변동성이 어느 방향으로 여파를 미칠지를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스타트업 여·수신 절대적…고금리 '직격탄' 맞은 SVB

SVB의 사업구조는 가계 및 기업대출을 모두 영위하고 있는 국내은행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SVB는 전적으로 실리콘밸리 내 기업들에 의존해 사업을 지속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특이 케이스로 평가됐다.

SVB는 미국 내 많은 특화은행들 중에서도 벤처기업의 여·수신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통해 20위권 내 대형은행 순위에도 이름을 올린 매우 특이한 경우였다.

SVB의 파산은 '고금리'와 '루머'가 결합한 형태로 진행됐다.

고금리 충격으로 SVB의 재무구조가 꾸준히 악화한 가운데, 주요 고객이었던 벤처기업들의 '뱅크런' 사태가 벌어진 점이 결정적이었다.

실제로 SVB의 지난해 말 이자이익은 전년대비 72.5% 증가했으나, 이자비용은 980% 증가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하는 흐름을 지속했다.

2022년 말 기준 SVB의 총수신은 1천747억달러 수준인데, 여신은 743억달러로 예대율이 42.5%에 불과했다.

앞서 가상화폐 전문은행인 실버게이트가 선제적 파산한 점도 '뱅크런' 분위기를 강화하는 데 영향을 줬다.

SVB의 주요 고객군인 벤처업계는 고금리와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유동성 니즈가 급증하는 흐름을 보였다.

SVB의 경우 보유 자산의 50% 이상을 국채와 MBS 등에 투자하고 있었는데, '뱅크런'으로 자금인출 수요가 급증하면서 장기채권들을 손실을 보고 매각해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 점이 SVB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말 기준 SVB가 보유한 채권 규모는 1천174억달러(한화 약 154조875억원)로 총자산의 55% 수준을 나타냈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인상에 속도를 내면서 보유채권 내에서 상당한 채권평가 손실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간의 금리인상 기조로 벤처업계의 유동성 '보릿고개'는 꾸준히 심화하는 흐름을 나타냈다.

이런 가운데 업황 악화로 예금인출 수요가 이어지자 SVB가 자금확보를 위해 18억달러(2조3천618억원) 수준의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보유국채를 매각했다.

SVB는 결국 재무구조 강화를 위해 유상증자 가능성을 거론했고, 모회사인 SVB파이낸셜그룹의 주가는 60% 급락하는 흐름을 나타냈다.

이후에도 뱅크런 사태가 지속된 데다, 매각 루머까지 겹쳐 문제가 커질 조짐을 보이자 금융당국이 신속히 개입해 폐쇄 결정을 내렸다.

사태가 더 확산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막자는 취지였던 셈이다.

다만, 국내 은행권에 이번 SVB 사태가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업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SVB의 경우 벤처기업들이 몰려 있는 특수 구조인 탓에 소문에 민감해 모두가 같은 패턴으로 행동이 몰리는 경향이 짙다"며 "반면, 가계대출 등의 비중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데다, 기업고객의 성향도 완전히 다른 국내 시중은행에선 비슷한 '뱅크런'이 일어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SVB는 지난해 말 기준 증시에 상장된 미국 테크·의료 벤처기업 가운데 절반에 수준인 44%에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사실상 실리콘밸리 내에서는 대부분은 업체들인 SVB를 이용하는 상황이다.

은행권의 다른 관계자는 "예금자보호법 등이 있는 만큼 소매금융단계에서도 SVB 사태와 같은 케이스가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미국 금융당국이 시스템적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도 차단하고 있는 만큼 간접적인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계부채 문제는 변수…건전성 위협되나

다만 국내 은행권에 가계부채 및 부동산 이슈가 고질적인 문제로 산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SVB 파산으로 인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건전성 문제를 터뜨릴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은행의 건전성 이슈가 이미 도드라져 있는 가운데 SVB 사태 여파 관련 새로운 불확실성까지 대두되다 보니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 가능성 우려가 이전보다 더 커지게 된 셈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꾸준히 인상하면서 가계의 이자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취약 차주들의 상환 여건이 악화되면서 은행권 전반의 연체율이 꿈틀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중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신규 연체율(12월 중 신규연체 발생액/11월 말 대출잔액)은 0.07%로 전월보다 0.01%포인트(p) 상승했다.

지난해 하반기 신규 연체율은 7월 0.04% 수준에서 8~9월에는 0.05%, 10~11월에는 0.06%, 12월에는 0.07%로 상승하며 점진적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응해 KB·신한·우리·하나금융 등 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연간 5조1천억원 규모의 대손충당금을 쌓은 바 있으나, 경기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규모 추가 충당금 적립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국내 금융기관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이고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다만 현재 경기가 좋지 않은 부동산 관련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 부동산PF 등에 대해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이날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부동산 PF 및 대출 연체율 등 자산건전성과 자본적정성을 점검하고, 위기 국면에도 문제가 없는 수준의 유동성과 손실 흡수능력을 갖춰 나가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실리콘밸리 은행 본사에 있는 로고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에 있는 로고. 2023.3.12 taejong7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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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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