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한국은행이 시장금리 하락으로 긴축의 정도가 상당폭 축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은은 8일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시장금리 수준을 통해 평가해 보면 올해 들어 장단기 국고채 금리가 빠르게 하락한 점에 비추어 긴축의 정도가 상당폭 축소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국고채 수익률 곡선이 전반적으로 하향 이동한 가운데 장기물 금리는 더 큰 폭 하락했다. 올해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에는 국내외 통화긴축 기대 약화, 안전자산 선호 등으로 시장금리가 기준금리를 한동안 하회했다.

한은은 금리기간구조 모형을 분석한 결과, 단기금리 기대와 기간프리미엄이 모두 축소된 가운데 장기물일수록 기간프리미엄 축소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단기물의 경우 물가 요인이 금리 하락을 주도했지만, 장기물일수록 경기둔화 가능성, 위험회피 성향 등과 같은 실질 요인의 설명력이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한은은 "현 기준금리는 중립 금리 범위를 소폭 상회하는 긴축적인 수준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금융상황지수(FCI)를 통해 평가하면 주택가격, 주가 등 자산 가격이 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조정된 점이 주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금융 여건은 긴축적인 수준을 지속했다.

유동성(M2 기준) 및 신용공급 측면에서는 양적지표의 증가세가 빠르게 둔화했다. 다만 기업 신용은 꾸준히 증가하는 등 제약 정도에 대해서는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정책 운용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잠재 리스크로 ▲인플레이션의 높은 불확실성 ▲금융불균형 해소 지연 가능성 ▲외환 부문 불안 가능성 ▲금융 불안 재연 가능성 등을 꼽았다.

한은은 "기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을 나타내는 다양한 근원 지표들이 높은 수준에서 하방 경직적인 모습을 보여 향후 인플레이션의 하락 속도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간 지연되어 온 공공요금 인상이 현실화할 경우 직·간접적 경로를 통해 오랜 기간에 걸쳐 인플레이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한은은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유로 지역에 비해 전기료·도시가스 요금 등이 점진적으로 인상됨에 따라 향후 근원물가에 추가적인 상승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서비스 소비가 펜트업 효과 등으로 증가세를 이어 나가는 가운데 노동시장도 양호한 모습을 보이면서 물가 상승 요인으로 가세했다고 말했다.

한은은 "근원물가의 경직성은 에너지 가격 상승 등 누적된 비용상승 요인의 2차 파급영향(second-round effect)과 양호한 소비회복 흐름 및 고용 상황에 주로 기인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국내경제는 하반기로 갈수록 중국 리오프닝 영향의 가시화, IT 경기 회복 등 대외여건 개선에 힘입어 수출을 중심으로 점차 개선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고금리·고물가로 인한 가계 구매력과 민간 투자 여력 약화, 부동산 경기 부진 등이 성장에 대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은은 금융불균형 해소 지연 가능성에 관해서는 "정부의 규제 완화 등의 영향으로 올해 들어 주택가격 하락세가 빠르게 둔화하고, 주택 관련 대출을 중심으로 은행의 가계대출도 재차 증가했다"며 "가계부채 디레버리징이 지연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외환 부문에서는 경상수지 적자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 연준이 금리를 추가 인상하거나 국내 통화정책 기조가 조기에 전환될 경우에는 환율 상승압력이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특히 경상수지 개선이 지연될 경우 성장의 하방 리스크와 외환 수급 불균형 위험이 커지면서 대외건전성에 대한 신뢰가 약화할 수 있는 점이 유의할 사항으로 지적됐다.

한은은 지난해 하반기와 같이 시장 전반의 유동성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금융 불안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다만 한은은 "비은행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부동산 금융 관련 신용 리스크(credit risk)가 여타 부문 및 시장 불안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고 말했다.

주택시장은 정부 규제 완화에 힘입어 매매 및 전세 가격 하락세가 둔화하고 있으나 높은 금리 수준, 전세시장 불안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하방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전세 가격은 2년 전과 비교할 경우 상당폭 하락한 수준을 보여 역전세난 우려가 높다.

상업용부동산 시장은 부진이 지속되면서 비은행금융기관의 부동산 관련 대출 연체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는 등 부실 위험이 커졌다.

한은은 "비은행금융기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상당 부분이 상업·업무용 및 아파트 제외 주거용 부동산 개발에 활용되면서 관련 시장 부진이 연체 규모 증가로 이어지는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큰 폭으로 증가한 자영업자 대출의 상당 부분이 상업용 부동산을 담보로 하고 있어 향후 부동산 시장의 부진이 여타 부문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또 "채권시장에서는 연말까지 은행채 대규모 만기도래, 특례보금자리론 조기 소진에 따른 주택저당증권(MBS) 추가 발행, 세수 실적 부진에 따른 국채 발행 등 수급 부담 요인들이 상존하고 있다"며 "부담이 일시에 집중되어 투자심리 위축, 비우량채권 구축 및 유동성 사정 악화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j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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